고부간의 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인 것 같다.우리나라에서 여자는 시집을 ‘간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했던 부계가족 사회에서는 구조적으로 고부간의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서양에서도 ‘시어머니는 설탕으로 만들어도 쓰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처럼 고부간의 갈등은 동서를 막론하고 같은 여자이면서도 서로 화목하거나 친밀할 수 없는 생물학적 혹은 심리적인 이유가 있는 듯하다.
고부간 갈등은 요즘 ‘단체대화방’(단톡방)이 가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지 못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이유도 된다. 특히 시부모와 며느리가 함께 있는 단톡방은 고부갈등을 부추기는 일종의 ‘모바일 시월드’로 인식되면서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의 메시지에 며느리가 즉각 답을 하지 않거나, 눈치 없이 자기 속마음을 꺼내 놓았다가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오해와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오죽하면 시댁 부모의 메시지에 며느리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이모티콘 응대법’이 개발되겠는가?
며느리는 단톡방에서 부지런히 이모티콘을 적절히 보내면서 시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시댁 단톡방에서 외면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 대답하지도 못하는 며느리의 고충이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고부간의 관계는 영원한 평행선일까?
갈등이 아닌 친밀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누가 그리고 어떻게 풀어야 할까?이 질문을 던지면서 신혼여행 다녀온 후 시댁에 인사를 가게 된 두 며느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리아(가명)는 신혼여행 후 곧바로 시댁을 방문했다. 그런데 시어머니로부터 큰 꾸지람을 듣게 되었다. 며느리가 인사를 오면서 청바지를 입고 왔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기본 예의가 없으며 시댁을 우습게 생각했다면서 크게 호통을 쳤다. 마리아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마리아는 시댁 선물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일단 편한 청바지 차림으로 쇼핑을 한 후 시댁에서 한복으로 갈아입을 참이었다. 그러나 정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시어머니로부터 받은 호통세례는 며느리의 온몸을 얼어 붙게 만들었다. 정작 자신은 한복을 준비해 왔으며 정식으로 옷을 차려입고 인사를 드리려 했다는 자기 변론도 하지 못했다. 결국 마리아는 무조건 잘못했다는 말만 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때부터 시댁 공포증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한편 마르타(가명)도 신혼여행 후 곧바로 시댁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다. 이때 마르타의 복장은 마리아의 경우보다 (시어머니가 보기에) 심각한(?) 상태였다. 헬로키티(만화로 된 고양이 캐릭터)가 엉덩이에 새겨진 분홍색 추리닝을 입고 시댁을 방문한 것이다. 현관문을 들어선 며느리의 모습을 처음 마주한 마르타의 시어머니 역시 기염을 토했다. 마리아의 시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마르타의 시어머니 역시 개념 없는 며느리를 두고 곧장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르타는 마리아와 전혀 다른 성격의 며느리였다. 마르타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추리닝 바람으로 인사를 오게 되어 많이 놀라셨죠? 호호. 어머니 사실 제가 정장을 차려입고 오려 했으나 그냥 이렇게 편하게 인사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이렇게 입고 왔어요.”
글 _ 박현민 신부 (베드로, 수원교구 중견사제연수원 영성담당, 심리학 박사)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