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우리 본당 주일학교는 아이들을 데리고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으로 물놀이하러 갔다. 점심은 자모회에서 준비해 주셨다. 오전 물놀이가 한창일 때 어머니들이 손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손수레에는 따뜻한 밥과 국, 반찬, 후식까지 가득 실려있었고 본당 주방에서 가져온 그릇과 숟가락, 젓가락도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먹고 싶은 반찬을 그릇에 수북이 담아 먹고 집에서 가져온 텀블러로 물을 마셨다. 아이들이 왁자하게 떠들며 바쁘게 수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자모회의 음식 솜씨는 역시 훌륭해서, 나도 반찬을 몇 번 더 받아먹었다.
식사를 마친 자리는 마치 메뚜기떼가 지나간 듯했다. 다 먹은 그릇과 수저를 수거해서 큰 통에 넣으니 따로 치울 게 없었다. 보통 야외 행사가 있으면 쓰레기가 한가득 나오기 마련이다. 이번 물놀이도 처음엔 일회용 도시락을 준비하려다가 계획을 바꾸었다고 한다. 본당에 있는 그릇과 수저를 자모회가 만든 음식과 함께 가져가서 배식하고, 아이들이 식사를 마친 후엔 다 먹은 집기류를 다시 본당에 가져가 설거지하는 번거로움을 택한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수영장 안전요원을 마주쳤는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그동안 많은 단체가 수영장을 방문했지만 일회용 도시락 대신 그릇을 가져와 직접 배식한 곳은 드물었다고 한다. 내 공로가 아닌데 괜히 어깨가 으쓱한다. 자모회 부심이 샘솟는다.
다른 건 몰라도, 어린이가 참여하는 행사에서는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게 맞다. 기후위기의 당사자가 어린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지금보다 더 뜨거워진 지구에서 살게 될 테지만, 이와 같은 사실은 봉사자의 번거로움과 노고 앞에서 자꾸 잊히곤 한다.
이미 시간과 노력을 들여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번거롭더라도 일회용품 쓰지 맙시다’ 말하기가 영 미안해서 원래 하던 대로 일회용품을 잔뜩 사는 일은 얼마나 흔한가. 열 명 내외 소규모 행사라면 모를까 수십, 수백 명이 참여하는 본당 행사에서 종이컵과 플라스틱 그릇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괜히 서로 번거롭게 하지 말자는 암묵적인 합의였을 것이다. 다행히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 쓰레기를 만드는 대신, 이왕 봉사하는 거 불편을 감수하는 것으로.
우리 주일학교에선 부활이나 성탄 등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줄 일이 있으면 가급적 포장지나 쇼핑백 대신 스티커를 사용한다. 공동의 집 지구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으나 선물하는 기쁨을 포기하기란 아직 어렵다. 언젠가는 물질적인 나눔 없이도 충만히 기뻐하게 되리라.
지난 6월에 초등 고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으로 1박 2일 캠프를 다녀온 것도 ‘찬미받으소서’ 정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은 보리수 열매를 따 먹으며 고기반찬 대신 나물을 맛있게 먹고 지구를 돌보는 설거지 방법을 배웠다. 이와 같은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아이들도 알게 될까. 피조물을 보호하는 것이 곧 창조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주일학교 활동을 할수록 느끼는 거지만 진짜 중요한 교리 수업은 교리실 밖에서 이뤄지곤 한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고 불편을 감수하고 아이들과 함께 성당 주변을 돌며 쓰레기를 줍는 동안에 말이다.
글 _ 정신후 블라시아(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