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교구 본당에서 미사를 봉헌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수도원에서 가까운 본당 신부님께서 연세가 드신 분이라서 어린이 미사를 부탁해오셨다.
어린이 미사 강론은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강론과는 다르게 준비해야 한다. 성인은 최소한 20분 정도는 집중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거기에 맞추어 강론 준비를 잘해야 한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위해서 대화식으로 강론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질문을 하기도 하고 몸동작을 크게 하며 퀴즈를 내서 정답을 맞힌 아이들에게는 선물도 준다. 그렇게 열심히 강론을 하고 미사를 마친 뒤 제의실에 들어가서 복사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학교 다니는 것은 재미있느냐, 복사 서는 것이 어렵지는 않느냐 등등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느닷없이 한 복사 아이가 “신부님, 신부님은 신부님 같지가 않아요.” 한다.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어, 그래?” 하고 말았다.
제의실에서 나와 수도원으로 걸어가는데, 그 아이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신부님은 신부님 같지가 않아요”라는 말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그 순진한 아이의 눈에 내가 너무 세속적으로 보인 걸까? 아니면 내가 죄를 많이 지어서 예수님께서 그 아이의 입을 통해 제대로 살라고 경고를 주셨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심지어 밤에 잠들기 전까지도 그 아이의 말이 계속 떠올라서 고민을 했다. 또 내가 그동안 너무 신부답지 않게 살았던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그 아이의 말을 화두 삼아 고민을 거듭하다가 드디어 다음 주일에 어린이 미사에 가는 날 그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신부님 같지 않다는 말이 무슨 말이야?”
그 아이의 대답.
“신부님들은 다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신부님은 그냥 동네 아저씨 같아요. 그래서 신부님 같지 않다고 했어요.”
나는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다행이다. 좋은 의미로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었구나.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혼자 끙끙 앓았던 것이다. 어쨌든 잘 살아야겠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
1991년 성 바오로 수도회에 입회, 1999년 서울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선교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사제서품 후 유학, 2004년 뉴욕대학교 홍보전문가 과정을 수료했으며 이후 성 바오로 수도회 홍보팀 팀장, 성 바오로 수도회 관구장 등을 역임했
다. 저서로 「신부생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