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시간의 사투. 최근 한 언론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치르는 시험을 소개했습니다. 전국에서 55만 명이 본 수능 시험의 마지막 종이 울리자 수험생들은 가족들의 품에 안겨 시험장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저녁 식사 시간을 넘겨 저녁이 깊어 가도 시험장을 떠나지 않고 남아 문제 하나하나에 열정을 불태우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시각장애인 수험생입니다.
올해 수능에 시각장애인 응시자는 모두 111명. 시각장애인이 수능을 치를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점자 시험지를 받은 시각장애인 수험생의 열정은 어느 비장애인 수험생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국어 시험지만 100장. 비장애인 수험생 시험지 16장에 6배나 많은 시험지를 받은 장애인 수험생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뿐이지 여느 청춘처럼 미래를 내보며 그리는 꿈은 거대했습니다.
이렇게 장애인이나 병상에 있는 환자 등 몸이 불편하여 수능 응시가 힘든 이들에게 국가가 편의를 제공하는 이유는 단순히 약자에 대한 선의나 배려가 아닙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즉 차이를 차별로 만들지 않기 위한 우리 공동체가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가치의 문제인 겁니다.
“장애인인 걸 천운으로 알아라.” 박민영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이 같은 당 비례대표이자 시각장애인 의원인 김예지 의원에 대한 신체 혐오 발언을 했습니다.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박 대변인은 김 의원을 가리켜 “배려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며 “(비례대표로) 장애인을 너무 많이 할당해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이 “사람 같지도 않다”고 한 박 대변인은 “장애인으로 받는 혜택이 너무 많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도 형편없었습니다. 김 의원과 장애인에 대한 혐오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2차 가해도 이어졌습니다. 박 대변인은 “과격하게 들리는 부분”도 있었다며 자신의 발언에 해명은 했지 김 의원에게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박 대변인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냈지만 정작 당에서는 “당내의 자그마한 일”이라며 덮어두기에 바빴습니다. 김 의원은 모욕과 명예훼손 혐의로 박 대변인을 고소했습니다.
우리 곁에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습니다. 장애인, 노약자, 이주노동자 등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투명 인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투명 인간들이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우리 공동체의 1순위여야 합니다. 몸과 환경이 다를 뿐 혐오와 차별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 아닙니다.
정치의 목적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일입니다. 약자에게 주는 혜택이 아니라 비장애인이 훗날 겪을지도 모를 사고에 대한 사회적 보험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이민자와 여성을 필두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증오의 시선이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우리 공동체 연대의 형제애가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장애인 혐오 정치>입니다. 혐오와 증오가 우리 공동체에서 사라지길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