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레오 14세 교황이 사형제와 이민 문제도 낙태와 더불어 ‘프로라이프(Pro-life, 생명옹호)’ 이슈라고 말하면서, 미국 가톨릭계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큰 혼란을 겪은 쪽은 가톨릭 정체성이란 본질적으로 낙태 반대에 관한 것이며, 낙태에 반대할수록 더 가톨릭답고 그 반대일수록 덜 가톨릭답다고 여겨 온 미국교회 내 집단이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레오 14세 교황이 프란치스코 교황 때부터 시작된 어떤 ‘새로운’ 입장을 옹호하고 있으며, 그것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나 베네딕토 16세 교황 등 이전 교황들과는 상반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실제로 프로라이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다 넓게 이해한다면, 이는 과거의 교황들을 하나로 묶는 수많은 공통점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선, 요한 바오로 2세는 낙태를 열렬히 반대했다. 그는 낙태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범죄”라고 불렀고, 교황직의 후반부 곧 소련 붕괴 이후에는 낙태를 대표적 사례로 확산되는 ‘죽음의 문화’와 싸우는 데 힘썼다.
당시 교황청은 1990년대 중반, 낙태를 국제법 안에서 기본적 인권으로 자리매김하려 했던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를 비롯한 세력에 맞서 거대한 싸움을 벌였다. 교황청은 이슬람 국가들을 비롯한 여러 개발도상국과 손잡고, 1994년 카이로 인구·발전회의와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회의에서 이러한 시도를 저지해 냈다.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낙태만이 ‘생명 이슈’였던 것은 전혀 아니다. 레오 14세 교황이 언급한 두 가지 사례, 즉 사형제와 이민을 살펴보자.
요한 바오로 2세는 사실상 사형제 전면 폐지를 주장한 인물이었다. 그는 말만 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사형수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직접 사면을 요청하기도 했다. 1999년 미국 세인트루이스를 방문한 교황은 미주리주 주지사였던 멜 카르나한을 직접 만나 사형수 대럴 미즈(Darrell Mease)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요청했다. 카르나한은 교황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올해 79세인 미즈는 교황의 호소 덕분에 지금도 살아 있다.
이민 문제에 관해 요한 바오로 2세는 국가가 국경을 관리할 권리를 인정했지만, 입국을 제한하는 올바른 방식은 “법을 더 엄격하게 만들고 국경 통제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출신국의 평화와 발전을 증진해 이주를 야기하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이주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연대와 자비를 촉구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견하듯 이민자들을 위한 ‘환대의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환경에 대한 가르침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오기 훨씬 이전인 1990년에,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미 “오존층의 점진적인 파괴 그리고 이와 관련된 온실효과는 이제 위기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하며, “생태계의 위기는 도덕 문제”라고 선언했다.
또한 그는 ‘평화의 교황’으로, 무력 분쟁과 세계 무기 거래를 끊임없이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 벌어진 거의 모든 무력 사용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중에는 2003년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에 맞섰던 일도 잘 알려져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프로라이프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이 말은 미국 정치에서 쓰이는 특유의 용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위와 같은 예들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례는, 그가 생명에 대한 위협을 숙고할 때 낙태만을 떠올렸던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 준다. 또한 그리스도인에게 생명을 수호할 책임이 있다고 말할 때, 그가 염두에 둔 것은 낙태에 반대하는 일 하나만이 아니었다.
덧붙이자면, 요한 바오로 2세는 미국교회 내의 가장 강경한 생명운동 진영이 내세운 모든 의제에 전적으로 동의한 것도 아니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일부 미국 주교가 낙태를 찬성하는 가톨릭 정치인들에게 영성체를 금지하는 조치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던 시기에도, 그는 종종 낙태 찬성 성향의 가톨릭 공직자들에게 직접 영성체를 주었다. 대희년이었던 2000년 당시 로마 시장이던 프란체스코 루텔리에게 영성체를 준 일도 그중 하나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낙태 문제에 관대했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다만 그는 어떤 사람이 얼마나 ‘프로라이프’한지를 평가할 때, 전반적인 생명에 대한 책임과 실천을 훨씬 더 폭넓게 바라보았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글 _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