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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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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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8살 막내는 성탄을 손꼽아 기다린다. 정확히 말하면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길 기다리는 것이다. 날짜를 헤아리며 기다리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특정한 날짜를 기억하고 축하하면서 한 해를 보낸다.


주일학교의 일 년도 특정한 날짜와 시기로 채워진다. 전례시기와 성월, 대축일에 알맞은 교리 수업을 한다. 교리교사의 바쁨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세 개의 꼭짓점이 있는데 부활 행사, 여름 캠프, 성탄 행사다. 요즘 우리 교사회는 성탄 행사 준비로 바쁘다. 토요일 저녁마다 회합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성당 어딘가에서 놀고 있을 삼형제가 보낸 문자 메시지가 회합 중인 내 휴대전화에 도착한다. “언제 끝나?”, “신신해(심심하단 뜻, 막내는 맞춤법을 잘 모른다)”, “배고파.”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그리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이 바쁨은 12월 27일 성탄 행사를 마치면 반드시 끝나기 때문이다. 아이들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미사를 드리면서 저도 모르게 전례력을 몸으로 익힌 덕분에 대림 시기로 시작한 ‘1년’에는 매년 같은 주기가 반복되고 그 리듬에 따라 주일학교가 흘러가며, 엄마가 바쁠 때가 있으면 한가할 때가 있다는 것을 체득했다.


내가 6학년 교리 시간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얘들아, 오늘 무슨 날이지?’다. 아이들은 아무도 ‘11월 29일이요’, ‘토요일이요’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일단 성당에 오면 세상 달력이 아닌 교회력을 헤아린다. 오늘을 말할 때 몇 월 며칠이 아니라 무슨 축일이고 뭘 기념하는지부터 생각하는 것이다. 


신부님 강론을 귀 기울여 들은 아이들은 바로 대답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아서 나는 보통 오늘이 무슨 날인지를 이야기하면서 교리 수업을 연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다. 낙엽이 예쁘게 내려앉은 본당 화단에 6학년 친구들과 함께 둘러앉아 ‘가난’이란 뭘까 이야길 나눴다. 더불어 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며 다다음 주에는 대림 시기가 시작한다고 말했더니 아이들이 ‘벌써요?’ 대답한다. 한 해가 끝나가고 새로운 해가 시작하는 시점에서 시간의 속도를 느끼는 건 나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동화든 숨겨진 이야기든 떠도는 소문이든 살아가는 내내 각종 이야기를 수집한다. 그중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는 인간이 사형선고를 내린 그분이 사실 최고 심판관이었다는 이야기다. 그 심판관이 무시무시한 왕권을 휘두를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고 온유와 자비를 보인다는 데서 어떤 희열을 느낀다. 


전례력은 매년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연약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아기가 고단한 지상 삶을 살다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온 누리의 임금이심을 스스로 드러낸다는 것은 수없이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이야기다. 정해진 시기에 특별한 사건을 기념하면서 구원의 신비를 몸으로 체험하고 마음 깊이 각인할 수 있어 기쁘다. 교리교사로서 내 목표는 주일학교에 오는 아이들이 그와 같은 삶의 방식을 익히는 것이다.



글 _ 정신후 블라시아(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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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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