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선생이 내 자리에 놓은 거지?” 학급조회를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와 내가 자리에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교감 선생님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무슨 의미인지 가늠은 하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무슨 말씀이신데요?” 하고 반문을 했다.
“뭘, 상본을 보면 알 수 있지.”
‘웃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화를 낸다고 해결이 되겠습니까?’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을 찾았을 때 구입한 상본(像本)에 적힌 말씀이다.교감 선생님은 의욕도 많으시고, 적극적이며, 추진력도 강하시다. 단지 흠결을 찾는다면, 일상적인 말도 화를 낸 것처럼 들릴 정도로 다소 다혈질적이시다.오늘 아침에도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언성이 높아졌다. 교무실 분위기도 금세 어두워진다. 책상 서랍을 가만히 열었다. 서랍 안에 가지런히 모아둔 상본을 몇 장 넘기지 않아 이 글 ‘웃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화를 낸다고 해결이 되겠습니까?’가 눈에 들어왔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베드로(교감 선생님의 본명)에게 힘을 주소서,’
잠시 기도 후 교감 선생님 책상 위에 슬쩍 올려놓았다.
퇴근 시각이 가까워 교무실로 내려오니 책상 위에 작은 메모지가 놓여 있다. ‘요한 선생님! 퇴근길에 잠시 만날 수 있을까요? - 베드로.’
교실로 다시 올라가 반장에게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일러두고 교감 선생님과 함께 학교 앞 단골 중식집에 자리를 잡았다.
“요한 선생, 고마워요. 요한 선생이 있어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아요.”
마음 속으로는 질책의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말이다.
“나도 화를 내고는 돌아서서 후회도 하고, 그러지 말자고 다짐도 하지요. 내 “요한 선생, 고마워요. 요한 선생이 있어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아요.”
마음 속으로는 질책의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말이다.
“나도 화를 내고는 돌아서서 후회도 하고, 그러지 말자고 다짐도 하지요. 내 급한 성질 때문에 성사를 볼 때도 있으면서 잘 고쳐지질 않는단 말이야. 그때마다 우리 요한 선생의 힘이 필요해요. 내가 부탁드릴게요.”
항간(巷間)에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됨)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나는 학교에서 반 농조로 ‘직화만사성’(職和萬事成 : 직장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됨)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교직은 출퇴근 시각이 일정하지 않다. 수업이 끝나도 학생들의 자율학습지도, 생활지도, 상담지도 등 일과 시간에 못다 한 일들이 산적해 있다. 아침 출근 시각도 방송 수업 시작 시각이 6시 30분까지니 6시까지는 출근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가정에 있는 시간보다 직장 생활 시간이 훨씬 길다. 우스갯소리로 학생들 하교 인사가 “선생님 집에 다녀 오겠습니다”라고 한다.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되듯, 직장이 즐겁고 화목해야 하루를 기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
교무실에서 얻어진 기쁜 마음은 그대로 교실로 전해진다. 교실로 들어서는 선생님의 밝은 미소는 학생들에게 평화로운 마음으로 전해진다. 학생들의 환한 얼굴은 더욱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즐겁게 생활한 학생과 교사의 귀갓길은 따뜻한 사랑으로 가정까지 사회까지 전해진다.
학교 발령을 받은 후도 이삼 년 간은 음주 흡연을 전혀 하지 않았다. 흡연은 지금도 하지 않지만, 그런데 음주는 그럴 수 없었다. 일과를 끝내고 동료 교사와 어울린 수다 속의 일 잔은 교직 생활의 요긴한 정보 교환처이고, 활력소가 되는 것을 깨닫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동료 간의 어울림, 기쁜 직장 생활의 활력은 나와 학생 모두에게 커다란 성장 요소가 되었다.
글 _ 정점길 (세례자 요한, 의정부교구 복음화학교 교장)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 38년 동안 교직 생활을 했다. 2006년 3월 「한국수필」에 등단, 수필
동호회 ‘모닥불’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가톨릭 사회복지회 카리타스 봉사단 초대 단장, 본당 사목
회장, 서울대교구 나눔의 묵상회 강사, 노인대학 강사, 꾸르실료 강사, 예비신자 교리교사, 성령기도회 말씀 봉사
자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의정부교구 복음화학교의 교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