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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편지 : 영적인 삶의 세 가지 중요한 순간

[월간 꿈 CUM] 영성의 길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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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간 꿈CUM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저는 니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Nyssenus, 335년경~395년)라고 합니다.1) 저는 여러분의 시대에는 튀르키예라고 부르는 나라의 카파도키아(Cappadocia)라는 지역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던 아리우스주의와 논쟁을 통해서 삼위일체론을 정립하고자 노력하였고, 주교로도 살았습니다. 이러한 저의 삶에서 하느님은 저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셨는데요, 그중에서 오늘은 여러분들이 영적인 삶을 살아갈 때 마주칠 수 있는 세 가지 중요한 순간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쓴 책들 중에 「모세의 생애」2)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모세를 통해서, 영적인 삶에는 크게 ‘빛의 단계’ ‘구름의 단계’ 그리고 ‘어둠의 단계’가 있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첫째, 모세는 미디안에서 살던 중에 하느님께서 불타는 떨기 속에서 나타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을 빛으로 만난 순간입니다. 둘째, 이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 광야를 거닐 때 구름을 따라가야 했고(물론 낮에는 빛의 형상인 불기둥), 또한 시나이산에 올라갈 때는 구름층을 뚫고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셋째, 모세가 마침내 하느님 앞에 서는 순간 불타는 빛 속에서 만난 하느님은 모세에게 어둠이었습니다. 

이 빛과 구름 그리고 어둠으로 상징된 영적인 순간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빛의 상징 : 저는 모세가 빛으로 오신 하느님으로 인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자신의 죄성을 보았고, 또한 자신이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된 존재임을 깨닫게 되고, 모든 만물의 창조주가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된 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둘째, 구름의 상징 : 저는 모세가 하느님을 향하여 나아갈 때, 자신의 모든 것이 정화되는 과정을 통해서만, 즉 힘들게 시나이산을 오르면서 앞이 제대로 안 보이는 구름층을 걸어야 하듯이, 인간적인 감각이나 생각을 버리는 과정이 있어야,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음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셋째, 어둠의 상징 : 저는 모세가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강력한 빛으로 오신 하느님을 뵙는 순간, 하느님은 인간이 감히 생각하거나 표현될 수 없는 분, 혹은 우리를 초월하신 분이기에 어둠으로 밖에 체험될 수 없음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제가 이러한 상징을 통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우리는 영적인 삶을 하느님에 의해서 시작하게 됩니다. 네! 하느님이 우리를 비추어 주심으로 인해서, 우리는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빛이 비추어질 때, 우리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바로 나 자신이 하느님이 주신 거룩한 본성에 걸맞게 살지 못했음에 대한 각성, 나 자신은 바로 주님의 것이며, 하느님이 아니시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각성, 그리고 모든 것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각성입니다.

위와 같은 영적인 각성이 생기면, 우리는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강력히 일어나 하느님을 향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영적인 길을 가는 동안 우리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버려야 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우리가 그동안 감각적으로 보고 들은 것들, 우리의 생각들, 지식들, 그 외 많은 것들이 하느님을 향하는 데 엄청난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들을 포기하고 버리기는 너무나 어려워 마치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고, 앞이 보이지 않는 구름층을 뚫고 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구름 속을 끝까지 걸어간 이들은 드디어 갈망하던, 하느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분이시기에, 보고도 볼 수 없고, 파악하고자 하나 파악할 수 없기에, 다만 깊은 어둠으로 밖에 체험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깊은 어둠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초월하신 하느님을 진정으로 만나 볼 수 있는 관상의 상태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은 이러한 영적인 순간들 속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순간에 있느냐?’가 아니라, 늘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갈망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갈망만 있다면, 여러분은 어느 순간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 앞에 서서 하느님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글 _ 이수완 교수 (로마노, 수원가톨릭대학교 하상신학원 영성신학)
2014년부터 수원가톨릭대학교 하상신학원에서 영성신학을 강의하고 있다. 2019년부터 수원교구 시복시성위원
회의 순교영성 강학에서,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 디에고 데 판토하의 「칠극」 등을 영성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및 강의를 하고 있다. 2012년부터 한국가톨릭 신앙인들의 영적인 삶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각 교구 및 본
당에서 ‘성인들의 삶과 영성’ 강의를 지속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성인들의 영적인 가르침을 소개하는 일을 소명
으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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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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