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 교황이 즉위 후 첫 해외 사목방문으로 11월 27일부터 12월 2일까지 튀르키예와 레바논을 찾아 대화와 평화, 교회일치를 강조했다. 교황의 이번 튀르키예 사목방문은 니케아공의회 개최 17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지닌다. 교황의 첫 해외 사목방문 현장을 소개한다.
“갈등의 시기, 대화가 필요해”
교황은 11월 27일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 에센보아 국제공항에 도착해 공항에서 공식 환영을 받은 후 곧바로 아타튀르크 묘소로 향했다. 이곳은 튀르키예 공화국 창시자이자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묘소다. 이어 교황은 대통령궁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회담한 뒤 국립도서관에서 에르도안 대통령과 정부 고위 당국자들, 외교사절, 시민사회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연설했다.
교황은 연설에서 “오늘,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는 대화를 증진하고, 굳은 의지와 인내 어린 결단을 가지고 실제로 대화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며 “지금 우리는 세계적으로 갈등 수준이 높아진 시기를 살고 있고, 경제적·군사적 힘의 전략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교황은 “우리는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기에 어떠한 방식으로도 이런 현실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니케아공의회 1700주년 기념
교황은 튀르키예 방문 둘째 날인 11월 28일에는 이스탄불 ‘성령 대성당’에서 튀르키예 주교단, 사제와 부제, 수도자 등과 만나고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와 그들이 운영하는 노인요양원을 방문해 “숫자가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앙에 대한 분명한 증언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하느님의 시선으로 현재를 바라볼 때, 하느님께서 ‘작음’을 택하셔서 우리 한복판으로 내려오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교황의 튀르키예 방문을 앞두고 교황청이 배포한 통계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가톨릭 신자는 약 3만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가 되지 못한다.
교황은 이날 동방정교회 수장인 콘스탄티노플의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와 이스탄불 남동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고대 니케아(오늘날 이즈니크)에서 열린 그리스도교 일치 기도회에 참석해 함께 신경을 낭독했다. 이 예식에는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그리스 정교회 총대주교들, 그 외 정교회와 성공회, 개신교 대표들도 참석해 니케아공의회 개최 1700주년을 기념했다.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는 교황과 다른 성직자들을 환대하고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숱한 격동과 어려움, 분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거룩한 자리를 공동의 경외감과 희망으로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교황은 “인류가 폭력과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 세계는 화해를 간절히 외치고 있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 사이의 완전한 친교에 대한 열망은, 언제나 모든 인간 사이의 형제애를 추구하는 마음과 함께한다”고 말했다. 계속해 “하느님 아버지를 믿는다는 것은 민족, 국적, 종교, 개인적 관점을 넘어 모든 남녀가 보편적 형제자매라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오늘날 교회의 갈등과 분열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언급한 뒤 “니케아는 폐허처럼 존재하지만, 니케아신경은 살아 있고,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묶어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교회일치 위해 다리가 되자’ 강조
교황과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는 11월 29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만나 공동 서명한 성명을 발표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향한 소망을 표현했다. 두 지도자는 ‘주님을 찬송하여라. 선하신 분이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시편 106,1)라는 제목의 공동 성명에서 니케아신경에 표현된 신앙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일치를 위한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천명했다. 교황은 튀르키예의 그리스도교 지도자들과도 만나 2033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 2000주년을 예루살렘에서 대희년으로 함께 기념하자고 제안하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셨고, 또한 성령 강림이 이뤄진 장소인 다락방에서 함께 2033년 대희년을 기념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교황은 같은 날 이스탄불 폭스바겐 아레나에서 미사를 주례한 자리에서는 튀르키예의 가톨릭 신자들이 대림 시기에 실천할 과제로 “다른 가톨릭 신자들, 다른 그리스도교 신자들과의 사이에 다리를 놓아 달라”고 요청했다.
교황은 튀르키예 방문 마지막 날인 11월 30일에도 그리스도교 일치를 향한 가톨릭교회의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교황은 콘스탄티노플 세계 총대주교청의 수호성인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인 이날 이스탄불 성 게오르기 대성당에서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가 주례한 전례에 참례했다. 과거 수십 년 동안 교황들과 총대주교들은 서로의 수호성인 축일에 대표단을 파견해 왔다. 교황은 “교회일치는 흡수나 지배가 아니라 은총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하고, 성 게오르기 대성당 발코니에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와 함께 나가 대성당 아래에 모여 있는 신자들을 축복했다.
교황은 튀르키예 사목방문을 마치고 11월 30일 이스탄불에서 레바논으로 이동하는 비행기 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했던 것처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한 기자가 에르도안 대통령과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 전쟁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는지 묻자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에서 평화가 증진되기를 바란다는 주제로 대화했다”고 답했다.
“끈기와 꾸준함으로 평화와 생명 지키자”
11월 30일 레바논 베이루트에 내린 교황은 조셉 아운 대통령, 레바논 가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이면서 중동 및 안티오키아 마로나이트교회 총대주교인 베차라 라이 추기경 등으로부터 영접을 받았다. 교황이 베이루트 대통령궁으로 이동하는 동안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많은 인파가 대통령궁 인근 거리에서 교황을 맞이했다. 교황은 아운 대통령과 비공개 환담 뒤, 정부 관계자와 종교, 문화, 경제, 시민사회 지도자 400여 명 앞에서 연설하며, 특히 레바논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당부했다. 교황은 “평화를 향한 헌신과 사랑은 눈앞의 패배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실망에도 굴복하지 않고, 희망으로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껴안는다”면서 “평화를 구축하려면 끈기가, 생명을 보호하고 가꾸려면 꾸준함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교황은 12월 1일에는 베이루트 ‘순교자 광장’에서 그리스도 일치와 종교 간 만남 행사를 열었고, 브케르케 안티오키아 마로나이트 총대주교좌 광장에서 레바논 젊은이들과도 만났다. 2일에는 잘 에드 딥 소재 ‘드 라 크루아 병원’ 의료진과 환자들을 방문한 후 2020년 베이루트 항만 폭발 현장에서 침묵 속에서 기도를 바쳤다. 교황은 베이루트 워터프런트에서 미사를 주례하며 공식 일정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