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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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 말고 메인 요리를 먹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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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6학년 친구들은 미사 중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도 뻥긋 안 하다가 파견성가가 끝남과 동시에 나불나불 떠들곤 한다. 내가 아무리 훌륭한 교리 수업을 한다 해도, 미사가 주는 기쁨과 은총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미사가 주요리고 교리는 디저트인 셈인데 아이들은 아무래도 디저트가 그나마 먹을 만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교리에 집중하게 하려고 가급적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니 그럴 거다. 

 

반면 미사는 그 시간에 오롯이 집중하여 참맛을 알지 못하면 지루하다. 정해진 형식이 있어서 일단 몸에 익으면 마음까지 기울이지 않아도 그럴싸하게 참여할 수 있다. 방금 휴대전화 화면에 뜬 메시지를 곱씹으면서 기도문을 유창하게 외우는 식인데, 이는 곧 지루함의 원인이 된다.

 

 

6학년쯤 되면 미사 중에 옆 친구랑 떠들거나 몸을 배배 꼬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저학년에 비해 교사가 주의를 줄 일은 거의 없다. 덕분에 미사 시간에 분주한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나는 할 일은 크게 없지만 이 조용한 6학년이 지금 온 마음을 다해 미사를 드리는가를 생각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우리 본당은 평화의 인사 시간에 모든 어린이가 차례로 제대 앞으로 나와서 신부님, 교사들과 하이 파이브를 하고 들어간다. 나도 제대 앞에 서서 아이들과 한 명씩 손바닥을 맞대며 인사를 하는데 고학년으로 갈수록 아이들의 얼굴이 무표정하다. 매주 하는 인사인데도 할 때마다 신이 나서 손바닥을 부딪치는 저학년 아이들과 달리, 5·6학년은 시큰둥하기 그지없다. 일부러 6학년 친구들의 손바닥을 꽉 움켜쥐어보기도 했는데 여전히 웃지 않아서 다소 당황했다.

 

 

미사 시간에 누구보다 얌전한 6학년이지만 찧고 까부는 꼬마들보다 더 미사에 집중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미사의 중요성을 알고 온 마음을 다해 미사를 드린다면 기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에 어울리는 표정은 웃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평화를 빌어주려면 나부터 평화로운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스스로 기쁨을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평화의 인사를 잘해야,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하는 사제의 당부를 실천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로 세상에 파견될 수 있다.

 

 

그리하여 교리 교사로서 가장 우선 달성해야 할 과제는 이거다. 아이들이 미사의 참맛을 느껴서 기쁜 얼굴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게 하는 것. 평화가 상징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낼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 이 어려운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이 하느님께 매달린다. 내가 무엇인가를 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힘이니 성실한 그분의 손길을 기다린다. 주님의 섭리로, 이 아이들이 미사 시간에 뭔가에 홀려봤으면 좋겠다. 성체를 모시면서 뜬금없이 눈가가 시큰해진다거나 하느님의 어린양을 부르면서 울컥해서 목이 메는 당황스러운 순간을 경험한다면, 예수님과 하나 되는 데서 오는 진정한 평화의 기쁨을 알 수 있을 거다.


 

 

글 _ 정신후 블라시아(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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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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