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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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은 미래, 유전자는 이미 우리의 운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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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개봉한 영화 <가타카(GATTACA)>가 최근 극장에서 재개봉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관람하게 되었다. 20여 년 전에 이 영화를 볼 때와, 그동안 변화된 세상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된 ‘가타카’는 매우 달랐다. 특히, 첫 자막 “The not-too-distant future(머지않은 미래)”를 보는 순간, 직관적으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하고 생각했다.

 

앤드루 니콜(Andrew Niccol)이 이 영화의 감독과 각본을 모두 맡았다. 이 영화가 제작된 1990년대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시기였다. 앤드루 니콜은 이 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윤리적 우려와 경고를 이 영화에 담아냈다. 

 

 

머지않은 미래 사회에서 인간은 적격자(valid)와 부적격자(in-valid)로 나뉜다. 태어난 아기의 피 한 방울이면 그 아기의 모든 신체적·지적 잠재력, 수명까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적격자의 지위는 체외 수정을 통해 배아를 생성하고 유전자 검사를 거쳐 우성 유전자를 가진 배아를 선별한 뒤, 그 배아의 사소한 결함도 유전자 편집을 통해 모두 제거된 채 태어난 사람에게 주어진다. 

 

 

유전자 선택을 거부하고 부부의 사랑 행위 안에서 자연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를 지칭하는 ‘신앙에 의한 출산자(Faith birth)’에게 사회는 ‘부적격자’라는 낙인을 찍는다. 자연 임신 출생자들은 건강 여부와 상관없이 최적화된 완벽한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불확실성 때문에 부적격의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가질 수 있는 직업 또한 한정되어 있다.

 

 

현실에서 유전 정보에 기반을 둔 고용 접근성의 제한 시도는 공평성 원칙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특권을 누려도 좋은 사람은 없다”는 전제하에 각 개인의 이익과 복리가 동일하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특권층은 늘 존재해 왔으며, 우리는 그 일원이 되기를 열망하기도 한다. 그 특권층에 도달할 사다리로서 우월한 유전자는 매우 매혹적이다.

 

 

최근 한 언론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스타트업이 유전자 조작 아기 실험을 추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일부 기업은 유전자 편집 없이도 ‘다유전자 스크리닝(polygenic screening)’을 통해 특정 특성을 예측하는 기술, 이른바 ‘진화형 선택 도구’을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에서도 무분별한 신생아 유전체 검사 관행이 지적되었는데, 이는 유전적 운명론이 현실로 스며드는 위험한 징후로 해석된다. 더 나아가 일부 학자들은 배아 또는 태아에게 시행되고 있는 유전자 검사를 가족계획을 위한 선별이나 낙태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해, 생명윤리적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차별을 거부하면서도 차별에 앞장서고 있는 이 사회의 모순에서 우리의 머지않은 미래가 어떤 사회일지 생각해 보게 된다.

 

 

어느덧 보조생식술은 저출산의 가장 강력한 도구로서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으며,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매우 유용한 도구처럼 비치고 있다. 여기에 유전자 검사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상업화하려는 시도가 결합되면서 윤리적 통제가 어려운 기술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부모가 자녀의 유전적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할 때, 비윤리적 선택은 ‘자녀에 대한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어 이기적 이타주의로 포장될 위험이 커진다. ‘차별을 거부하지만 차별을 강화하는’ 모순된 사고가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침투했다. 그렇다면, 입법자들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저출산이라는 명분이 이 위험한 사고의 흐름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과연 어떤 기준으로 생명기술을 허용하고 있는가?


 

 

글 _ 최진일 마리아 교수(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연구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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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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