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미사에 빠졌어요.” “동생을 때렸어요.” “엄마에게 심하게 대들었어요.” 이런 고백을 들을 때 그들에게 자주 해주는 훈화가 있다.
“오늘 미사에 부모님과 함께 나왔니? 오늘 이 짧은 한 시간 미사 동안 부모님을 위해 기도해주길 바래.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한 마디 쑥스럽겠지만 한 번 해봐. 엄마! 아빠! 내가 오늘 엄마와 아빠를 위해 미사 때 기도 드렸어요. 그러니까 힘내세요!”
가족. 언제 들어도 포근한 단어이다. 이 포근한 단어가 중독을 이겨내는 힘을 전해준다. 알코올중독 병원에 입원한 대부분의 환자는 가족에 의해서 입원된다. 차라리 가족이 없으면 병원에도 입원하지 않을 수 있으니 가족이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반대로 생각해 보자. 그 가족들은 숙식을 제공하는 병원비를 부담해야 한다.얼마나 지긋지긋했으면 병원비를 부담해서라도, 가족의 원망을 들으면서까지 강제로 병원에 입원을 시킬까? 부모와 자녀 사이라면 그나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아내와 남편이 그런 결심에 이르기까지 어떤 마음이었을까? 병원보다 이혼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을까? 차라리 술로 인생이 망가져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을까? 그들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의 시간들을 보낸 뒤 최후의 보루로서 병원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알코올중독환자들은 ‘밑바닥을 쳐 본 경험’을 한 번 이상씩은 해보았다고 고백한다.
그들이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던 시간도, 병원을 퇴원한 뒤 A.A. 모임(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 모임)에 참석하는 시간들도 모두 가족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래서 중독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가족 모두의 문제이다. 중독은 혼자만 이겨내는 시간이 아닌 가족 모두가 이겨내야 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알코올중독환자들의 모임과 함께 알코올 중독환자들의 가족 모임이 있으니 그 모임의 이름을 알아넌(AI-anon)이라고 부른다.
알아넌은 알코올 중독자들의 가족들에 의해서 창립되었다. 세계 131개국에서 24,000여 그룹이 모임을 갖고 있을 만큼 A.A. 모임처럼 오랜 전통과 전 세계적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알코올 중독자들도 아닌 그들이 왜 이런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일까? 그것은 알코올 중독은 가족 구성원 모두를 병들게 만드는 ‘가족병’이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자는 자신의 음주문제를 받아주고 처리해 주는 가족에게 의지해 왔으며 또한 가족들 역시 그러한 알코올 중독자에게 중독되는 것이다. 그래서 알코올중독자 가족들은 심리적으로 불안감, 우울감, 고립감 등의 부정적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알코올 중독자들의 가족들을 위한 모임인 알아넌은 매주 한 번씩 모임을 갖고 현재 음주를 지속하고 있는 알코올 중독자로 인한 고통을 서로 나누며 공감한다. 이는 ‘공동의존’으로 비롯된 심리적 문제들을 털어놓는 것이다.
알코올중독자의 약 90 이상은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나 어머니로부터 성장했다. 알코올중독은 여러 가지 심리적인 문제들을 술에 의존함으로써 나타나는 ‘증상’에 불과하다. 그 가슴 밑바닥에 깔려 있는 상처들이 치유되어야만 비로소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알아넌들도 마찬가지다. 알아넌들은 초기에 모임에 참석할 때는 가족 내 알코올중독자로부터 받는 고통을 털어놓고 공감을 나누고자 참여하기 시작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에게도 여러 가지 과거의 상처들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가정 및 사회에서 어떠한 실패를 경험하고 가슴앓이하며 살아왔는지 털어놓게 된다. 이처럼 알아넌 역시 모임 안에서 자신 스스로가 치유되어감을 느끼는 것이다. A. A. 와 알아넌의 공동 목표는 ‘나도 살고, 너도 살자’이며, 모든 멤버들은 ‘하루하루에 살자’라는 결심이다. 같은 마음으로 중독의 고통에서 벗어나 아픔을 치유하고 자신을 성장시키고자 노력하며 부르짖는 외침이다.
유아세례, 복사단 출신. 100는 아니지만 많은 사제는 이 두 가지 공통분모를 지닌다. 부모 중 어느 한 분도 신앙심이 없는 경우에서 성당을 다니고, 사제의 길을 결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처럼 부모의 신앙생활은 사제의 길을 결심하는 성소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마치 알코올 중독자 부모 밑에서 알코올 중독자가 발병할 확률이 높듯이 신앙심이 깊은 부모 밑에서 신앙의 싹은 훨씬 쉽게 트일 수 있다. 그러나 정반대로 알코올중독 부모가 아니어도 알코올중독자가 될 수도 있으며, 아무리 신앙심이 깊은 부모에게 신앙교육을 받더라도 무신론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부모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내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픈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내 가족이 아프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가족은 기도해 주며, 기도해 주어야 한다. 그것만이 세상의 어떤 힘과 응원보다도 더 큰 힘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세상의 어떤 약도 끊을 수 없는 중독을 끊을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글 _ 이중교 신부 (야고보, 수원교구 사회복지회 둘다섯해누리 시설장, 사회복지학 박사)
2009년 사제품을 받았다. 2021년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여성 알코올의존자의 재발과 회복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장애인 재활시설 둘다섯해누리 시설장이며 서강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