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01) (Christ and The Samaritan Woman)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 1560~1609)
[월간 꿈 CUM] 그리는 꿈CUM _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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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니발레 카라치, 그리스도와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캔버스에 유채, 170×225cm, 1594~1595년, 브레라 미술관, 이탈리아 밀라노
안니발레 카라치는 이탈리아 바로크 회화의 맨 앞줄에 서 있는 화가로, 빛을 활용한 표현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바로크 거장 화가가 깊은 묵상 끝에 창조해낸 요한복음 4장 1-42절 ‘우물가의 여인’ 이야기를 만나보자.
끝없는 여정, 먼지로 뒤덮인 길, 작열하는 태양, 투덜거리는 제자들…. 지친 예수는 우물 옆에서 휴식을 취해야 했다. 우리처럼 상처받기 쉽고 연약한 몸에, 지친 마음을 가진 나약한 한 인간은 그래서 지금 등을 우물 벽에 기대고 앉아있다.
그때,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요한 4,7)
여인은 약간 따분해 하면서 여느 날처럼 우물가를 찾는다. 이 여인은 잠시 후 우물가에서 만나는 사건이, 2000년이 지나도록 전 세계 온갖 언어와 문화, 세대의 사람들이 되풀이해 입에 올리는 엄청난 사건이 될 것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그녀는 물을 길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물 대신 영원하신 분이 주시는 영원한 선물을 ‘길어 올리게’ 될 것이다. 예수 또한 이 여인과 나눌 대화가 이후 2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뒤흔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의 심장 박동 수가 빨라졌다.
사마리아 여인은 육욕에 빠진 여인, 자비를 갈망하는 여인,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여러 번의 결혼 실패로 좌절에 빠졌었고,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혼란스런 욕망으로 인해 늘 불안한 상황이었다. 직설적이고 충동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순수했다. 바리사이처럼 거만하지 않고, 율법학자들처럼 박식한 체하지 않았다. 그 여인에게 예수가 한 모금의 물을 청한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요한 4,7)
그런데 여인의 응답이 상당히 불친절하다.
“어떻게 유다 사람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마실 물을 청합니까?”(요한 4,9 참조)여인의 퉁명스러운 대꾸에도 예수는 개의치 않는다. 2000년 넘게 수많은 영혼에게 빛을 선물한 그 감동적인 대화가 이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