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장 구요비 주교를 비롯해 학술 심포지엄 발제자와 논평자들이 7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앵커] 지난 9월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된 한국순교복자 수도가족 창설자죠.
방유룡 신부의 발자취를 살펴보는 심포지엄이 8일 열렸습니다.
순교 영성을 기반으로 한국 교회의 정체성을 살린 방 신부의 공적이 재조명됐습니다.
김혜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신학생 시절 건달 차림에다 장난이 심해 '종로 깍쟁이'로 불렸던 방유룡 신부.
그런데 두 번째 방학 후 갑자기 '성인이 되겠다'고 선언하며 수사처럼 생활했다고 전해집니다.
방 신부의 극적인 변화를 이끈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역사학자인 방상근 박사는 방유룡 신부 시복 추진 학술 심포지엄에서 1919년 3.1운동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방상근 석문 가롤로 / 역사학자>
"벼락 맞을 정도의 큰 충격이 본인에게 왔기 때문에 이런 삶의 변화가 생겼다고 봤을 때 그런 충격적인 사건이 뭐가 있을까. 3.1운동의 실마리를 찾아봤는데…"
방 신부는 1930년 사제가 된 후 교구 사제로서 25년간 본당 사목을 했습니다.
주로 북한 지역에서 사목했는데, 교육을 중시하고 성소 계발과 청년 활동 장려에 힘썼습니다.
개성본당에서 해방을 맞이한 방 신부는 이듬해인 1946년 그동안 열망해왔던 한국순교복자수녀회를 설립합니다.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이 되는 해에 우리나라에서 한국인이 세운 첫 수도회입니다.
방 신부는 이후 1953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1960년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를 잇따라 설립합니다.
순교 영성을 바탕으로 가족수도회를 창설한 최초의 한국인.
이는 교회사적으로 한국적 수도 영성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박문수 프란치스코 / 우리신학연구소장>
"매일의 삶에서 자기를 비워가는 과정을 순교로 이해했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것, 일상의 작은 순교를 실천하는 것, 그리고 수도 생활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것.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순교 영성이 뿌리를 내리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토대가 중요한데, 그래서 수도가족을 설립했고…"
방 신부가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된 지 석 달 만에 열린 심포지엄.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장 구요비 주교는 심포지엄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구요비 주교 /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장>
"방유룡 신부님의 삶과 영성을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그분이 남긴 신앙의 발자취가 한국 교회 안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돕는 귀한 작업입니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총장 백남일 신부는 방 신부의 발자취가 널리 알려지길 희망했습니다.
<백남일 신부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총장>
"방유룡 신부님의 모범적인 생애와 덕행 그리고 명성이 이 시대의 많은 신앙인들에게 알려져 자신들의 신앙생활 안에서 본받고 싶은 하나의 귀감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날 심포지엄엔 방 신부의 시복 추진에 대한 높은 관심 속에 가족수도회 회원 등 2백여 명이 몰렸습니다.
한국순교복자 수도가족은 내년 6월 2차 심포지엄을 열어 방 신부의 영성과 덕행, 명성을 더욱 깊이 살펴볼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