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순교한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사제 7위를 기리는 태피스트리(직물 공예)가 사제들의 고향 아일랜드에서 순교지 한국으로 건너왔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한국지부는 11월 28일 서울 성북구 골롬반선교센터에서 하느님의 종 7위의 순교 75주기를 기리며 태피스트리 축복식을 거행했다. 축복식에는 작품을 직접 한국으로 가져온 재클린 니 크리븐 도위(Jacqueline n
e Creaven d''Towey)씨가 함께했다. 도위씨는 순교 사제 중 한 명인 손 프란치스코(Canavan Francis) 신부의 후손이다. 그는 연금으로 목돈이 생기자 이를 자신을 위해 쓰기보다 순교 사제들의 삶과 신앙을 알리는 데 쓰기로 마음먹고 태피스트리 작가 프란시스 크로우(Frances Crowe)씨에게 작품 제작을 의뢰했다.
작품 제목은 ‘기억으로 엮인(Wooven into Memory)’이며 크기는 115x170㎝다. 아일랜드와 한국의 아름다움과 순교 사제들의 신앙과 사랑을 씨줄과 날줄로 엮었다. 작품 오른쪽 아래에는 순교 사제 7위의 초상이 있고, 왼쪽에는 흙을 담고 있는 두 손이 표현돼 있다. 이는 그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이 이 땅에 뿌리내렸음을 드러낸다. 왼쪽에는 한국을 상징하는 무궁화와 대나무가 오른쪽에는 아일랜드 교회를 나타내는 켈트 십자가상이 있다. 가운데 녹색 짜임은 아일랜드의 초원을 상징한다. 로마숫자로 표기된 ‘ⅠⅤⅨ’(159)는 한국전쟁 중 희생당한 아일랜드인 수를 나타낸다. 이밖에도 죽음의 행진, 동생을 업은 아이, 부활의 희망 등 다양한 상징들이 섬세하게 엮여 있다.
도위씨는 “처음 본 작품 초안은 전쟁과 순교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어둡게 느껴졌다”면서 “전쟁 속에서 피어난 희망과 사랑을 알리고 싶었기에, 자료를 더 찾다가 케빈 오록 신부의 시를 발견하고 이를 작가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오록 신부의 시 ‘네 핏속에’의 한 구절 ‘변치 않고 늘 푸른 소나무와 대나무를 보라 / 겨울 눈 속에 피어나는 매화꽃을 보라’ 덕분에 작품은 전보다 훨씬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로 완성됐다.
이후 도위씨는 8월부터 두 달가량 손 프란치스코 신부의 고향 아일랜드 헤드포드를 시작으로 순교 사제의 고향 본당과 후손들이 있는 지역을 순례하며 순교 사제의 삶과 영성을 알렸다. 한국에선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사제들이 사목했던 광주대교구(목포 산정동성당·광주가톨릭박물관·광주가톨릭대학교)와 춘천교구(춘천교구청) 등을 방문해 작품을 소개하고 사본을 증정했다. 작품을 프린트한 사본에는 케빈 오록 신부의 시가 영어 원문과 한글 번역본, 아일랜드어로 적혀있다. 원본은 2026년 3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상시 전시될 예정이다.
도위씨는 “가는 곳마다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계속 들었다”면서 “순교 75주기를 맞는 해에 이 작품을 완성하고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뜻깊다”고 했다. 도위씨의 방한 일정에 함께한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오기백 신부는 “아름다운 작품을 통해 아일랜드와 한국을 엮어준 도위씨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순교자들의 삶을 기억하고 후대에 알리려는 노력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