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불암산 아래에 있는 수도원에 한 중년 남성이 찾아옵니다. 그는 월간지 대표로 누적되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잡지의 폐간을 결정한 다음이었습니다. 남성은 스스로 밥해 먹으며 하루 종일 기도 했지만 마음에 쌓여있는 불안을 떨쳐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새벽 미사에서 하느님은 사랑하는 이에게 짊어질 수 없는 십자가는 주지 않으신다는 시편의 말씀을 듣고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립니다. 다시 희망을 발견한 겁니다. 피정을 접고 산에서 내려온 남성은 마침내 폐간했던 잡지를 다시 발행합니다. 그 남성은 올해로 창간 55주년을 맞는 우리나라 최장수 월간지 샘터의 발행인 김성구 프란치스코입니다.
1970년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로 월간 샘터를 창간합니다. 그 후 아들 김성구 프란치스코 대표로 이어진 샘터는 한 때 월 50만 부까지 팔릴 정도로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샘터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에는 당대의 내놓으라는 글쟁이들의 글을 샘터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청춘의 고 피천득 프란치스코 선생을 비롯해 장애를 안고 희망을 노래하던 장영희 교수와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가 샘터가 수필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물했습니다. 최인호 베드로 작가는 자전적 연재 소설 가족을 무려 34년 동안, 법정 스님은 산방한담(山房閑談)을 16년 동안 샘터에 연재했습니다. 그외 시인 정호승, 소설가 김승옥 정채봉이 샘터에서 일했고 노벨문학상 수상자 소설가 한강이 샘터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자신의 필력을 갈고 닦았습니다. 화가 장욱진, 천경자 등 대가들이 기꺼이 샘터의 표지와 삽화를 그려주었습니다. 좋은 글들과 독자들의 소소한 일상이 어울려져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샘터에 흘러넘쳤습니다.
그런 샘터가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인한 경영상 어려움으로 내년 1월을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갑니다. 사실상 폐간입니다. 혜화동의 대학로 명물이었던 붉은 벽돌 사옥을 팔면서까지 샘터 발행을 이어갔지만 매년 수 억원의 적자를 감당하지 못한 겁니다. 월간지 샘터를 들었던 사람들의 손에는 이제 스마트폰이 있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사람들에게 뉴스와 동영상을 소개하는 시대에 샘터의 앞날은 정해져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렵게 위기를 극복했는데 다시 없어진다니 허탈합니다.
휴간에 들어가는 샘터의 마지막 주제는 ‘첫 마음’입니다. 영상이 활자를 압도하는 시대에 잡지를 포함하여 도서, 신문 등 전통적인 출판물들이 하나씩 사라져 가는 시대 흐름이지만, 물질과 성공만을 따르지 않고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를 중시하겠다는 샘터의 첫 마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 샘터, 다시 잠들다 >입니다. ‘언젠가 냉동인간처럼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한 샘터는 이제 긴 겨울잠에 들어갑니다. 하루빨리 겨울잠을 끝내고 샘터가 우리 곁으로 돌아와 평범한 행복을 다시 전해주길 기도하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