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률시토회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여자수도원(이하 수정 수도원)은 최근 대수도원으로 승격됐다. 그리고 대수도원장으로 홍명선(엠마누엘) 수녀를 선출했다. 한국 교회에서 여자수도원의 대수도원 승격은 최초다. 남녀 수도원을 합치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1964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고성수도원(2019년)에 이어 세 번째다.

여자 대수도원장은 아빠티사(abbatissa)로 불린다. 엄률시토회는 2024년 9월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총회를 열고 수정 수도원의 대수도원 승격을 승인했고, 수정 수도원은 11월 24일 경남 창원시 수도원 현지에서 마산교구장 이성효 주교 주례로 대수도원 승격 미사를 봉헌했다.

이성효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일반 수도원이 대수도원으로 승격된다는 것은 이 수도원이 다른 공동체를 낳고 돌보고 이끌 수 있는 ‘어머니 수도원’이 될 수 있음을 교회가 인정했다는 뜻”이라며 대수도원 승격이 지닌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자치권, 내부 규율, 인사, 양성에 대한 자율성이 더 커지고 교회와 지역 사회에 대한 책임도 커진다”면서 “더 깊은 기도, 더 성숙한 공동체, 더 충실한 양성과 봉사를 통해 매일 새롭게 응답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트라피스트회로도 알려진 엄률시토회는 관상 봉쇄 수도원으로 성 베네딕도 수도 규칙을 따른다. 엄률시토회에서 대수도원으로 승격되기 위해선 △성대서원자(종신서원자) 12명 △경제적 자립 △성소자 가능성 △성대서원자 대다수가 자국인이라는 요건을 갖춰야 한다. 수정 수도원은 10여 년 전 이미 법적 요건을 갖췄지만, 승격 신청에 미온적이었다.

수정 수도원 측은 “대수도원이라는 이름에 취해 시토회 삶의 단순성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컸다”고 이유를 밝혔다. 2007~2011년에는 창원시 수정만 매립지 조선소 유치 문제로 수도원 역사상 처음으로 봉쇄를 풀고 시위에 참여하는 등 수도원 울타리를 넘어서는 문제에 대처하는 일도 벌어졌다.

수정 수도원은 “여러 외적 문제가 진정되는 국면에 들어섰고, 지난해 수정 수도원을 방문한 동 베르나르두스 총장께서 대수도원 승격을 더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셨기에 이에 응답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의 삶은 이 성령의 촉구하심에 얼마나 민감하게 깨어 그에 응답하는가에 달려있을 것”이라며 “우리 카리스마의 기본인 ‘사막성’과 ‘공동체성’을 함께 살아냄으로써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복음의 기쁨을 증거해야 함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 수도원? 대수도원?

수도원은 ‘monastery’와 ‘convent’로 구분되지만, 우리나라에선 모두 수도원으로 번역해 부른다. 의미에 따라 구분하면 monastery는 수도승수도원, convent는 수도원으로 볼 수 있다. 수도승 수도원은 수도생활의 발상지인 이집트 사막에서부터 11~12세기 주로 설립됐다. 세상과 거리를 두고 기도와 침묵, 관상과 같은 수도승 생활을 근본 바탕에 두고 필요에 따라 활동에 나서기도 한다.

convent로 불리는 수도원은 중세 무렵부터 교육, 의료, 자선사업 등 시대에 필요한 활동을 위해 생겨난 수도회다. 이 수도원은 대수도원(abbey), 대수도원장을 뜻하는 아빠스(abbas, 남성), 아빠티사(abbatissa, 여성)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 수도승 수도원과 더욱 구별된다. 대수도원은 abbey를 번역한 말이다. 유럽에서 12세기까지 수도승 수도원은 특정 요건을 갖추면 모두 대수도원으로 승격됐다. 대수도원이 되면 자치권이 주어지며, 지역 교구의 교구장 주교가 아닌 교황 직속이 된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