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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피 (01) : 유럽 대륙의 첫 그리스도교인, 리디아

[월간 꿈 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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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필리피 순례객들이 리디아 성녀가 바오로 사도를 만난 냇가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아줌마가 좋다.

‘아줌마’라는 말에선 힘과 활력이 넘친다. 삶에 대한 강한 의욕이 느껴진다. 가식이나 숨김이 없다. 삶에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소망하고, 스스로의 욕구를 땀을 통해 충족시켜 나간다.

이렇게 아줌마가 좋은 것은, 자주 만나는 신앙 아줌마들의 해맑은 ‘까르르’ 웃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교회의 각종 교육과 세미나, 연수회가 열릴 때마다 자리를 가득 메워 강사들을 뿌듯하게 하는 것은 어김없이 아줌마들이다. 본당 사목회 간부들은 대부분 아저씨지만, 정작 낮은 곳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것은 언제나 아줌마들이다. 그러면서도 십자가 아래서 낮은 자세로 엎드려 “나는 죄인입니다” 한다. 아줌마들은 영성 생활의 달인들이다. 산전수전 겪다 보니 참고 사는 데는 이골이 났다. 그러다 보니 인내, 끈기, 절제, 겸손, 희생 등의 덕(德)에 별다른 영신 수련 없이 쉽게 다다른다. 성체조배실에서 4~5시간씩 기도하지 않아도 죄를 쉽게 성찰하고, 이웃의 죄를 쉽게 잊는다. 그리고 늘 남을 위해 산다. 섬김을 받지 않는다. 남편, 시부모, 아이들, 본당 신부님을 위해 산다. 아줌마에게선 공동체를 돌보는 땀 냄새가 난다.

성경에는 이런 아줌마 이야기로 가득하다. 아시리아의 위협 속에서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것은 유딧 아줌마였다. 부활한 예수의 모습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도 마리아 막달레나 아줌마였다. 예수 체포 후 제자 아저씨들이 두려움에 떨며 숨었을 때, 겁 없이 십자가 아래까지 따라간 이들은 예루살렘 아줌마들이었다.

여기 또 한 명의 위대한 아줌마, 유럽 대륙 첫 그리스도교 신자 리디아(Lydia Purpuraria, 축일 8월 3일)가 있다. 유럽 대륙에 건너간 바오로 사도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리디아 아줌마다. 성경은 이 만남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필리피에 도착해)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다.”(사도 16,13-14)

앞에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소개하면서 잠깐 언급했듯이 리디아 아줌마의 고향인 티아티라는 자색 옷감 생산지로 유명했다. 당시 자색 옷감은 고가에 거래되었고, 리디아 아줌마는 고향인 티아티라에서 고급 자색 옷감을 수입해 필리피 일대에 유통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사람이 신심도 깊었다. 성경에 리디아는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라고 소개되는데, 이는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유대 신앙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바오로 사도의 열정이 리디아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리디아는 하느님 말씀에 완전히 매료된다. 그런데 여기서 리디아가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사도 16,14)

아줌마의 위대함은 능동적이 아니라 수동적이라는 점이다. 스스로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라 열도록 내맡기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을 받아들인 마리아처럼, 그렇게 리디아는 유럽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 아줌마가 고집이 아주 셌다. 자신만 세례받은 것이 아니라 온 집안사람을 세례로 이끌었다. 그리고 또 한 번 고집을 피운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사도 16,15)

리디아는 바오로 사도를 자신의 집으로 강제로(?) 끌고가 모셨다. 어쩔 수 없이 바오로 사도는 리디아 집으로 가서 짐을 풀었다. 유럽 대륙의 첫 선교 거점이 마련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리디아 덕분에 바오로 사도는 안정적으로 필리피에서 선교 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테살로니카, 코린토, 아테네 등지로 선교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참고로, 성경에는 리디아와 같은 신앙 아줌마들의 이야기로 넘쳐난다.

‘아퀼라’와 ‘프리스카’(1코린 16,19 참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바오로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로마 16,4 참조) 콜로새에서는 ‘아피아’가 그런 사람이었다. 바오로는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1장 2절에서 아피아를 ‘자매’ (αδελφη)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녀가 초기 선교 활동에서 중요한 협력자였음을 의미한다. 소아시아 에페소 인근 라오디케아 교회에서는 ‘님파’가 그런 사람이었다. 님파는 리디아처럼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자신의 집을 회합 장소로 제공했다. 예루살렘에서는 베드로 선교 활동에 조력한 ‘성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다. 베드로는 감옥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직후 곧장 마리아의 집으로 향했다.(사도 12,12 참조) 베드로에게 있어서 가장 믿을 수 있었던 사람은 마리아였다.

코린토 인근에 살았던 ‘포이베’(로마 16,1 참조)도 빼놓을 수 없다. 바오로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6장 1-2절에서 그녀를 ‘후원자’(프로스타티스, προστατις)라 부르면서 그녀의 공식 직함을 ‘디아코논’(διακονον), 즉 ‘일꾼’(협력자, 부제)으로 호칭한다. 바오로 사도가 쓴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로마로 직접 배달한 사람이 포이베다.

필리피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리디아 성녀가 바오로 사도를 만났던 냇가를 찾았다.(사도 16,13-15 참조) 냇가 바로 옆에는 성녀 리디아 기념 경당이 소박하게 조성되어 있다. 2000년 넘게 흘러온 그 냇가에 발을 담갔다. 적막 속에서 한참 동안 그렇게 앉아있었다.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물소리가 다른 소리로 들렸다. 그것은 2000년 전 신앙 아줌마들의 ‘까르르’ 웃음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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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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