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8일 본당 주일학교의 교리 방학이 시작됐다. 교리는 방학이라 아이들은 오후 3시에 미사를 드리고 나서 간식만 먹고 집에 간다. 교리교사들은 대신 새 학년 맞을 준비를 한다. 일 년 행사 계획을 잡고 부서 활동을 정비하고 각자 새로 맡은 학년과 함께 무엇을 배우고 어떤 활동을 할지 고민한다. 올해 초 나는 6학년 아이들을 만날 준비를 하면서 몇 가지 계획을 세웠다. 매주 아이들과 함께 짧은 글을 쓰리라. 툭하면 공원으로 나가 재밌는 추억을 쌓으리라. 학원 가느라 성당에 빠지는 아이들이 없게 하리라.
결과는? 뭐 하나 계획대로 된 게 없다. 1학기엔 15명 정도 되던 6학년 아이들이 요 몇 주 10명도 나오지 않는다. 글쓰기는 하도 원성이 자자해서 그만두었다. 아이들로 하여금 ‘부담 없이 한 번 써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려면 정교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만 다시금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우리 밖에 나가서 수업 하자” 하면 “추워요, 귀찮아요, 그냥 여기서 해요”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내가 맡은 영상선교부에서 영상을 4편 제작해서 미사 시간에 상영회를 연 것, 새침하던 6학년 아이들과 서로 별명을 부르며 장난할 만큼 친해진 것은 나름 뿌듯한 성과다. 내년 이맘때엔 스스로 ‘나 좀 잘했네’ 여길 정도가 되면 좋겠다.
진부하지만 이런 질문이 어울리는 시기다. ‘어떤 주일학교 교사가 되고 싶은가?’, ‘이 일을 왜 하는가?’ 20대 때 평일이고 주말이고 성당에서 살다시피 하는 날 보며 부모님도 친구들도 종종 비슷한 질문을 내게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순전히 재밌어서”라고 대답했다. 애들 만나는 것도 재밌고 같이 교사하는 언니·오빠랑 노는 것도 재밌다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조금 진지해졌다.
‘요즘 아이들이 저도 모르게 필요로 하지만 다른 데선 얻을 수 없는 것’을 성당에서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바로, 환대와 신앙이다. 성적이나 가정환경, 성장 배경 등에 상관없이 환대받을 수 있는 곳이 이 사회에 얼마나 될까. 적어도 주일학교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 공동체적 가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자 희망이었으면 좋겠다. 주일학교만큼은 정서적으로 어려움 겪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대했으면 좋겠다.
최근 부쩍 자아가 발달한 큰애와 인내심의 바닥을 치는 대화를 나누면서 확인하게 된 사실이 있는데, 아이들에게도 깊은 신앙이 자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뭐 대충 맛있는 거 먹이고 재밌는 활동 하면 좋아해’라는 생각은 얼마나 안일한가.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한 아이라도 제 나름대로 교리를 이해하며, 부모의 모든 말에 어깃장을 놓는 사춘기 청소년이라도 하느님과 성모님을 공경한다.
그런 아이들의 삶에 신앙의 초석을 놓는 게 주일학교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커다란 책임감에 아찔해지다가도 깊이 감사하게 된다. 결국 일하시는 건 하느님이다. 교사는 거들 뿐.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지만 그 성실함이 열매로 맺히는 시기와 형태는 인간의 사고 범위를 벗어나므로, 그저 믿어야 한다. 주일학교 교사로 일하는 동안 해온 모든 고민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하느님은 나의 시행착오조차도 재료로 쓰신다고 말이다. 지금 우리가 더 좋은 교리교사가 되기 위해 헤매는 것조차 당신 계획 안에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글 _ 정신후 블라시아(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