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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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성탄을 축하하기에 ‘나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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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을 축하하기에 나쁜 때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어지고, 전쟁이 유럽 전역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공공연히 거론된다. 가자지구는 휴전 약속이 오갔지만, 서로를 절멸하려는 의도가 겹친 폭력이 계속되면서 ‘존재 자체’가 공격의 명분처럼 취급되는 이들의 고통이 누적되고 있다.


안전한 곳을 찾아 폭력과 빈곤을 피해 떠나는 난민들은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 중독, 조직·비조직 범죄는 가정과 공동체를 해친다. 시민사회의 균열과 부패는 사회를 지탱하는 신뢰를 갉아먹는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 정치적 성향이나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와 폭력이 말과 행동으로 표출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회의와 약속이 이어지지만, 환경 파괴를 완화하는 데서조차 이기심과 무지가 걸림돌이 된다. 개인의 삶 역시 예외가 아니다. 좌절과 건강 문제, 재정적 압박, 관계의 손상, 가족 안의 갈등, 삶의 터전을 흔드는 돌발적 비극, 그리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유한성’이 우리를 압박한다.


결론은 분명하다. 지금은 성탄을 축하하기에 나쁜 때다. 그리고 매번 그랬다.


한 세기 전,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이라 불렸던 전쟁의 뒤안길에서 영국 시인 토머스 하디는 「성탄, 1924」이라는 시를 썼다. 그는 “땅 위에 평화”를 노래하면서도, 2000년의 미사 끝에 인간이 도달한 곳이 ‘독가스’라고 냉소했다.


2025년 성탄에 이르러, 제1차 세계대전의 독가스는 오히려 ‘순박해 보일’ 만큼, 인류가 서로를 파괴하는 방식은 더 정교해졌다는 자조도 나온다.


그렇다면 성탄을 축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단순하다. 나쁜 때에 축하할 수밖에 없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일 뿐 아니라, 성탄이 기억하는 사건 자체가 ‘나쁜 때’ 한가운데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나쁜 때에 태어나셨다. 정확한 탄생 연도는 알 수 없지만, 당시가 좋은 시절이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과중한 세금과 폭력은 일상이었고, 잔혹함은 오락으로 소비되기도 했다. 예수님은 피지배 민족의 한 사람으로 태어났으며, 유다 공동체의 종교 지도층은 지배 권력과 상호 이익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의학 지식은 미비했고 치료는 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영유아 사망과 산모 사망은 흔했고, 이동은 해적과 산적 때문에 위험했다. 대다수의 주거는 초라했고, 식량은 지역 수확에 좌우돼 기근의 위협이 상존했다. 사람들은 악령이 도처에 있다고 느끼며 두려워했다.


복음서는 성가정의 가난을 전한다. 루카 복음에 따르면 성전 봉헌 때 바친 예물은 비둘기 한 쌍에 불과했다. 예수님은 머물 곳이 없어 ‘집 없이’ 태어났고, 마태오 복음은 살육을 일삼는 권력자 때문에 그 가족이 피난길에 올라 ‘난민’이 됐다고 전한다.


예수님은 나쁜 때에 태어나셨다.


그렇다면 좋은 때가 없으니 성탄을 축하하지 말아야 할까. 오히려 반대다. 나쁜 때는 성탄을 기념할 수 있는 유일한 때다. 동시에 가장 적절한 때이기도 하다. 성탄은 ‘나쁜 때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평온하고 밝기만 했다면, 인간은 하느님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주님의 강생은 우리가 ‘정상’이라 부르며 견뎌 온 비정상의 시대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을 임마누엘, 곧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부른다.


물론 성탄이 세상을 단번에 고쳐 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성탄은 두 가지를 분명히 한다. 첫째, 최악의 때에도 우리는 하느님께 버림받지 않았다는 확신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즉시 해결하지 않으신다. 대신 십자가에서, 하느님은 인간이 겪는 최악의 시간과 고통을 당신 자신이 함께 짊어지신다.


둘째, 성탄은 ‘고치는 일’이 우리 몫으로 남아 있음을 일깨운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어떻게 세상을 회복시키는 길을 걸어야 하는지 배운다. 이기심을 버리고 사랑으로 섬기는 삶, 나의 시간을 ‘나쁘게 만드는’ 사람들까지 포함해 타인을 향한 헌신적 봉사가, 하느님과의 친교를 현실에서 실행하는 방식이다.


나쁜 때는 우리가 그 시간을 끝낼 힘이 없음을 깨닫게 한다.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나쁜 때를 살아가는 한 모델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어쩌면 우리가 성탄을 ‘제대로’ 기념하기 위해, 나쁜 때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글 _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 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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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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