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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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소화’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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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는 신앙 안에서도 ‘맛집’을 찾아다닐 때가 있다. 말씀을 잘 풀어 주시는 신부님이나 수녀님의 강의를 찾아 멀리까지 가고, 영상과 녹음을 챙겨 들으며 깊은 감동을 받는 경우다. 그 시간은 분명 은총의 시간이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신앙이 새로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나 역시 그런 체험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마음에 남는다. 나는 말씀을 제대로 듣고 있는가, 아니면 살고 있는가! 감동은 받았지만, 그 말씀이 내 하루의 선택과 태도를 실제로 바꾸고 있는지는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말씀도 음식과 비슷하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씹지 않고 삼키면 몸에 제대로 흡수되지 않는다. 귀로만 듣고 흘려보내는 말씀은 잠깐의 포만감은 줄지 몰라도 우리 안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직 소화되지 않은 말씀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말씀을 소화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말씀을 한 번 더 되새기는 시간, 곧 묵상의 시간이다. 미사나 강론에서 들은 한 문장을 마음속에 남겨 두고, 하루를 살다가 문득 떠올려 보는 일이다.


“이 말씀이 오늘의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지금 이 상황에서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이 질문들이 반복될 때, 말씀이 우리 안에서 서서히 분해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의미가 분명하지 않았던 말씀이 삶의 장면과 부딪히며 새로운 얼굴을 드러낸다. 바로 그때 말씀이 지식이 아니라 기준이 된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들은 한 번에 이해되도록 주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곱씹을수록 마음을 건드리고, 살아갈수록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말씀은 그렇게 소화된다.


말씀이 소화되어 흡수되면 변화가 일어난다. 말씀은 내 감정과 판단 위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화가 날 때 나를 멈추게 하고, 억울함이 치밀어 오를 때 다른 길을 가리킨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이 말씀은 이해하기는 쉽지만, 삶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말씀이 우리 안에 스며들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즉각적인 반응 대신 한 박자 늦추고, 단호한 판단 대신 여지를 남긴다.


흡수된 말씀은 말의 톤을 바꾸고, 관계의 방향을 바꾸며, 하루의 리듬을 바꾼다.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아, 말씀이 나를 살리고 있구나.”


말씀은 더 이상 책의 문장이 아니라, 내 삶을 이끄는 내적 나침반이 된다.


몸에서 배설이 막히면 병이 되듯, 신앙에서도 흘려보내지 못하면 병이 된다. 말씀을 듣고 감동하고 깨닫고도 그 모든 것이 나에게서 끝난다면, 신앙은 쉽게 자기만족에 머문다. 나만의 영적 체험으로 굳어 버릴 수 있다.


신앙의 배설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이다. 작은 관심과 작은 배려, 작은 나눔이면 충분하다. 말 한마디를 삼키고, 한 번 더 손을 내미는 일. 눈에 띄지 않지만 분명 누군가를 살리는 행동들이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형제들 가운데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듣는 말씀에서 머무르지 않고, 소화되어 삶이 되고, 다시 사랑으로 흘러갈 때 신앙은 막히지 않고 순환한다. 말씀을 잘 듣는 신앙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신앙으로. 오늘 우리가 찾아야 할 ‘맛집’은 강연장이 아니라, 우리의 하루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글 _ 노봉수 야고보(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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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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