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에 규정되어 있던 자기 낙태죄와 의사 낙태죄가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고, 형법의 이 규정들은 국회가 개정 작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2021년 1월 1일부터 그 효력을 상실하였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낙태를 규제할 법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낙태에 대한 처벌을 포기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위험성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지난 2024년 6월에 발생한 36주 태아 낙태 사건이다. 이 사건이 당시 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이 자신의 낙태 과정을 고스란히 촬영하여 유튜브에 게시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사태의 심각성을 분명하게 말해 준다. 낙태죄가 사실상 폐지가 된 상황에서 낙태의 윤리적 심각성 역시 인지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황청에서 1974년에 발표한 문헌 「낙태 문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많은 이가 처벌의 포기를 승인으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낙태의 경우, 이런 포기는 입법자가 낙태를 더 이상 인간 생명에 대한 범죄로 간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살인은 언제나 엄중히 처벌되고 있기 때문이다.”(「낙태 문제」 20항)
상황이 이러한데도 국회는 형법 개정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에는 형법이 아닌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통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민주당의 남인숙 의원과 이수진 의원 그리고 최근에는 박주민 의원까지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였다.
이 법안들의 주요한 문제점은 임신의 전 기간에 걸쳐서 낙태를 허용하고 있으며, 낙태 약물의 도입을 승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자보건법은 1973년 일본의 「우생보호법」을 본떠서 제정되었는데, 그 주된 목적은 산아제한 정책을 위하여 낙태 허용 사유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자보건법 제14조는 낙태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사유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발의된 개정안은 그와 같은 사유 자체를 삭제하고 오로지 여성이 원하면 낙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개정안들은 만삭 낙태를 사실상 승인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중대한 문제점은 낙태 약물의 도입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낙태를 수술이라는 방법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개정안들은 낙태의 정의에 약물을 통한 낙태를 포함시키고 있다. 낙태 약물의 도입은 2025년 9월 16일 정부가 발표한 123대 국정 과제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 정부가 낙태약을 국내에 도입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낙태약의 판매를 주장하는 이들은 낙태약의 사용이 낙태 수술보다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낙태약 판매가 합법화된 미국에서도 낙태약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동반하는 것이 보고되었고, 실제로 부작용의 발생 빈도 역시 정확하게 측정되지 않는다. 즉, 현재 보고된 낙태약 발생 빈도보다 실제는 더 높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낙태약의 도입은 수많은 태아의 생명은 물론이고 여성의 생명과 건강까지 위협하는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인간 생명의 초기에 이루어지는 낙태를 법제화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인간 생명에 대한 차별은 이미 정당화되었고, 모든 사람의 동등한 존엄성을 주장하기가 점점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은 사라지지 않는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는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는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의 영혼이라고 말하면서, “자녀를 낳아도 낙태시키지 않는” 이들로 묘사하고 있다. 영혼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악법의 제정을 막고 가장 약한 생명이 환대받고 보호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때 세상은 죽지 않을 것이다.
글 _ 박은호 그레고리오 신부(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