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23일 서울 금란감리교회에서 열린 제19차 세계감리교대회 중 가톨릭과 루터교·감리교 대표들이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가톨릭 대표는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의장 발터 카스퍼 추기경(가운데)과 김수환 추기경(오른쪽)이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가톨릭 신자와 갈라진 형제들이 함께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1월 18~25일)을 지냈다. 1908년 미국에서 시작한 일치 기도 주간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운동으로 활성화된 계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였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1960년 공의회 준비를 위해 ‘그리스도인일치촉진사무국(현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부)’을 설립하고, 정교회·개신교 등 다른 교파를 ‘열교’가 아닌 ‘갈라진 형제’로 부르며 공의회에 참관인으로 초대했다. 그의 뒤를 이은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1964년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을 반포하고 기도를 ‘일치 운동의 혼’이라고 강조하며 장려했다.
시대 흐름에 부응하고자 한국 주교회의는 1965년 ‘전국 그리스도교 재일치위원회(이하 일치위원회)’를 설립했다. 이듬해인 1966년 3월 8일 서울 초동장로교회에서 가톨릭·개신교 첫 합동 기도회가 열렸다.
1968년은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사에 기념비적인 해다. 처음으로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지냈기 때문이다. 기도 주간은 주교회의 일치위원회와 한국기독교연합회(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NCCK)가 주관했다. 여드레 동안 성당과 교회에서 차례로 합동 기도회와 ‘강단 교류’가 진행됐다.
첫날인 1월 18일은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처음으로 개신교 목회자가 연설했다. 주인공인 강원용(한국기독교장로회 경동교회) 목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자”고 강조했다. 가톨릭에서는 일치위원회 총무 박양운(서울대교구, 훗날 환속) 신부가 1월 24일 종로감리교회에서 강론했다.
1968년 한국 가톨릭과 개신교는 기도 주간에 이어 성경도 공동 번역하기로 했다. 교황청 일치촉진사무국과 개신교 ‘세계성서공회 연합회’의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 번역위원회를 꾸려 구약 작업을 먼저 시작했지만, 분량과 어려움으로 1971년 신약이 먼저 완역됐다. 신약위원에 서울대교구 허창덕·백민관 신부가 참여했다. 영국·프랑스·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4번째로 이룬 쾌거였다. 이로써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처음으로 같은 역본으로 성경을 읽게 됐다. 1977년 주님 부활 대축일, 마침내 선종완(원주교구) 신부를 필두로 구약까지 완역해 「공동번역 성서」가 세상에 나왔다.
2006년 역시 특별한 해였다. 가톨릭과 루터교·감리교 세 교회 대표가 ‘의화(하느님의 은총으로 인간 안에서 일어난 내면적인 변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1999년 가톨릭과 루터교가 합의한 공동 선언에 감리교가 동참한 것이었다. 선언 서명식은 7월 23일 서울 금란감리교회에서 열린 제19차 세계감리교대회 중 진행됐다. 가톨릭 대표로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현 그리스도인일치촉진부) 의장 발터 카스퍼 추기경과 김수환 추기경이 참여했다.
그해 12월, 주교회의 일치위원회의 후신인 ‘교회 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는 한국정교회·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함께 첫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한 에큐메니컬 교회 일치 순례’에 나섰다. 위원장 김희중 대주교(당시 주교)를 비롯한 순례단은 교황청과 정교회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교구청(튀르키예 이스탄불)·세계교회협의회 본부(스위스 제네바) 등을 방문했다. 이들은 순례 중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자료를 제작하기로 했다. 그 결과 2009년 처음으로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한국에서 준비한 기도문으로 일치 주간을 지냈다. 2013년은 최초로 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부산에서 열렸는데, 교황청 일치촉진평의회 의장 쿠르트 코흐 추기경 등이 참관인으로 참여했다.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향한 여정은 서로를 바라보고 배려하는 노력 속에 교회사에서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