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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하느님은 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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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이 계속되고 있어요. 겨울에 하는 기도는 어떤 말이어야 할까. 추운 이들이 춥지 않게, 외로운 이들이 외롭지 않게, 고통받는 이들이 아프지 않게, 슬퍼하는 이들이 슬프지 않게 해주십사 청하다가 생각을 바꾸어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고백록」에서 “울어야 할 즐거움, 기뻐해야 할 슬픔”(10권 28절)이 겨루고 있는 삶의 나날을 묵상하면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끝없는 시련 속에 놓이는 일’이라고 했는데요.


즐거움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울어야 할 즐거움이 있는 것처럼, 슬픔이 나쁜 것은 아니어서 기뻐해야 할 슬픔도 있다는 깨달음은 아마 삶의 시련이 주는 지혜겠지요. 그러니 추위도, 외로움도, 아픔도, 슬픔도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다른 은총을 보여주는 거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겨울날 저는 정리를 많이 하고 있어요. 아버지를 여읜 큰 일을 계기로, 아버지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며 아버지가 쓰신 시와 묵상들을 정리하고 있고요. 학교에서는 2년 동안 해 온 보직이 끝나는 시기라서 사무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온 연구실에 앉아 책으로 빈틈없이 빼곡한 책장을 바라봅니다. 첫날은 벽에 붙은 수많은 그림과 사진들을 떼어냈고, 둘째 날은 버려야 할 서류들을 솎아 냈습니다. 사무실 컴퓨터를 정리하며 많은 파일을 지웠고, 연구실 컴퓨터를 새로 포맷했고요. 청소와 정리가 이처럼 유쾌한 일이었나 생각하며 빠른 속도로, 후련하게, 버려야 할 것들에 집중합니다.


버리는 일에 늘 좀 주저했기에 쌓아두는 게 많았는데, ‘버리고 정리하고 매듭을 짓는 이 겨울은 또 다른 선물이구나, 하느님은 때맞춰 많은 것들을 예비해 주시는구나’ 싶습니다. 


마침 들고 있는 시집 「그 나라 하늘빛」에서 마종기 시인이 청하는 겨울 기도를 마주합니다. 겨울날, 눈 오는 소리로 마음을 채워 무너지고 일어서는 소리를 듣게 해 달라는 말, ‘겨울의 하느님은 참 편안하구나.’ 시인이 말할 때 그 편안함은 따뜻하고 여유롭고 풍족하게 채워지는 데서 오는 편안함이 아니라, 비우고 벗고 가난해짐으로써 가능한 편안함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벌판에서 혼자 떨고 있는 나무를 보고서도 괜찮다고 합니다.


시인에게 기도는 슬픔 속의 노래입니다. ‘내가 눈물을 닦으면 / 당신은 웃고 있다’고 할 때, 시인은 인간의 눈물에서 기쁨을 여시는 하느님을 만납니다. 슬퍼하고 아파하는 일은 우리가 이 세계를 살아가면서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징표일 것이니, 슬픔 속의 노래는 그런 공감과 연민과 연대입니다.


이 겨울에 “내가 아는 하느님은 편안하구나” 말할 수 있는 것은, 비우고 내려놓는 일이 결국에는 다른 열림을 가능하게 함을 아는 시인의 예지 덕분이겠지요? 늘 그렇듯 바삐 움직인 하루 끝에서 저는 이 말 한마디에 그만 “아멘” 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 어디 계시나요? 목메어 매달리는 애통한 기도도, 간절한 애원도, 이 말 한마디에 수굿해집니다. 편안한 하느님의 너른 품 안에서 산 자도 죽은 자도 다 함께 착한 얼굴 나직이 마주합니다.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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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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