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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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아니라 방식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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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대가족 속에서 자랐다. 조부모님을 중심으로 삼촌, 고모, 사촌 형제들이 한집에 모여 살았다. 식사 시간이 되면 집안은 늘 소란스러웠다. 국그릇 하나를 가운데 두고 숟가락들이 분주히 오갔다. 국에 떠 있는 두부 몇 조각은 늘 경쟁의 대상이었다. 막내였던 나는 어렵게 건져 올린 두부를 입에 넣기도 전에 형들의 젓가락에 빼앗기기 일쑤였다. 국은 있었지만, 내 몫의 두부는 늘 없었다.


그때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형들이 많으니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 보면, 문제는 음식의 양이 아니라 나누는 질서였다. 모두가 동시에 손을 뻗는 식탁에는 기다림도, 배려도 없었다. 그 결과 음식은 남았지만, 마음은 늘 허기졌었다.


마르코복음에 나오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이야기도 우리는 흔히 그렇게 기억한다. 빵이 갑자기 늘어났고, 물고기가 기적처럼 불어났다는 이야기로 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찬찬히 읽어 보면, 복음이 강조하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방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고 한다. 그들이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굶주림은 단순히 배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 먹을 수 있는지, 누가 책임지는지, 무엇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 사람은 먼저 불안해진다. 배보다 먼저 마음이 무너진다. 제자들의 제안은 매우 현실적이다. “저들을 돌려보내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오늘의 시장 논리로 보면 합리적인 해결책이다. 각자 책임지고 각자 해결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다르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예수님께서는 먼저 사람들을 앉히신다. 50명, 100명씩 자리를 잡게 하신다. 혼란을 가라앉히고, 모두가 받을 준비를 하게 하신다. 질서 없는 자리에서는 음식이 넘쳐도 다툼이 생긴다. 자리가 정리되어야 나눔이 시작된다. 이 장면은 먹는 일보다 앞서는 준비가 무엇인지를 조용히 보여 준다.


그다음에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신다. 먹기 전의 감사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음식이 ‘내가 차지해야 할 몫’에서 ‘오늘 나에게 맡겨진 선물’로 바뀌는 순간이다. 소유가 되는 순간 경쟁이 시작되지만, 선물이 되는 순간 나눔이 열린다. 우리가 식사 전에 드리는 짧은 기도에는 바로 이 고백이 담겨 있다.


빵은 예수님의 손에서 곧바로 군중에게 가지 않는다. 제자들을 거쳐 전달된다. 기적은 한 사람의 손에 머무르지 않는다. 참여와 전달을 통해 완성된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다. 이것은 과잉이 아니라 충만의 표지다. 필요한 만큼 먹고도 남는 상태,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풍요다.


이 이야기를 오늘 우리의 식탁으로 옮겨 놓으면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정말 가진 것이 부족한가, 아니면 나누는 질서가 무너져 있는가? 양을 늘리기 전에, 자리를 먼저 정리했는가? 먹기 전에, 감사했는가?


어릴 적 국그릇 속 두부를 둘러싼 기억은 이제 다른 가르침으로 남아 있다. 예수님의 기적은 빵의 양을 바꾼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바꾼 사건이었다. 오늘 우리의 식탁에서도 기적은 여전히 가능하다. 다만 그 기적은 숫자가 아니라, 나누는 방식에서 시작된다.



글 _ 노봉수 야고보(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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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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