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이 되면 늘 되새기는 성경 구절이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뒤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14-15)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알고 계셨던 예수님이 앞으로 제자들이 겪게 될 고난과 갈등을 예견하신 걸까?
예수님은 첫 성찬식에서 제자들의 일치를 간절히 바라셨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이처럼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셨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지난 천 년 동안 그리스도교는 분열과 갈등으로 여러 교파로 나뉘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교회 일치 운동(에큐메니컬)이 본격화됐다. 이는 모든 교회를 하나의 교단으로 합치자는 운동이 아니다. 같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는 교회들이 서로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 됨을 지향하자는 것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지난해 즉위 후 첫 해외 사목 방문으로 1700년 전 니케아 공의회가 열렸던 튀르키예 이즈니크(옛 니케아)를 방문했다. 당시 교회는 한목소리로 신앙을 고백하고 삼위일체 신앙의 기초를 닦았다. 교황은 일치 메시지에서 종교를 어떤 형태의 광신주의와도 혼동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그런데 지금 전 세계 종교는 어떤 모습인가? 종교가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자본과 권력에 취해 정치 권력과 밀통하고 야합해 종교 본연의 역할과 정체성을 저버리고 있다. 종교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 정통 교의에서 벗어난 사이비 종교의 교주는 자신이 신이라며 메시아를 자처한다. 예수님의 부활 신앙을 왜곡하고 현혹해 각종 사탕발림과 폭력· 갈취 등으로 교주의 탐욕을 채운다.
사이비 종교는 정치를 교세 확장의 도구로 사용하고, 정치는 이들을 집단행동의 표밭으로 이용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 속에 숨어 불법과 탈법으로 서로 대가와 편향을 주고받는다. 건국 이후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지 않고 서로를 교묘히 이용해왔다. 정치와 정통 종교 간의 유착은 많이 줄었지만 사이비 종교와의 유착은 더욱 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1월 12일 종교 지도자와의 간담회에서 사이비 종교의 폐해에 대해 언급했다. “참으로 어려운 주제지만 우리 사회에 끼치는 해악을 너무 오래 방치해 폐해가 크다”고 했다. 종교 지도자들은 “정교 유착을 넘어 시민들 삶에 큰 피해를 주는 행태는 엄정하게 다뤄야 한다”고 공감했다.
정치와 종교의 한결같은 목적은 사회 공동선을 실현하는 것이다. 정통 종교든 사이비 종교든 그 어떤 종교 단체나 종교인의 위법 행위는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종교와 정치인의 불법적 선거 개입이나 로비는 사법 절차에 따라 철저히 단속되고 처벌돼야 한다.
사이비 이단의 폐해는 대통령의 의지만으론 근절되기 어렵다. 정통 종교가 정교분리의 모범을 보이고 종교 본연의 목적인 사회갈등 해소와 정의 실현에 충실할 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선 갈라진 그리스도인이 편견을 넘어 교회 일치를 위해 연대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또 이웃 종교와도 활발한 교류를 통해 상호 이해의 공간을 더욱 넓혀 국익과 국격을 높이는 공존공영의 길을 가야 한다.
계엄과 탄핵 정국에서 우리는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는 타락한 일부 종교 집단의 정치적 선전·선동에 치를 떨었다. 이젠 ‘참 신앙’을 추구하는 정통 종교가 서로 마음의 벽을 허물고 힘을 모아 정부와 함께 정치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사이비 종교의 폐해를 막아야 한다. 정상(正常)이 정상적(正常的)으로 작동하면 가짜는 발도 못 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