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4일 대구 수성구 대구여자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배부받은 답안지를 작성하고 있다. 뉴시스
“2024년 11월 14일 13:10~13:35, 전국 모든 공항의 비행기 이착륙 금지.”
대학 수학능력시험 영어 듣기평가 시험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어 이 시각에는 비행기의 이착륙을 금한다는 뉴스의 자막이다. 대학 시험 시각에 이처럼 거국적인 제재를 가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외에 또 있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의 자녀 교육에 대한 열기는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오래 전 일인데도 이때만 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차례대로 입시 상담을 바쁘게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H군의 차례가 되었다. 대개는 어머님을 모시고 오기 일쑤인데 뜻밖에도 아버지를 모시고 들어왔다.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선생님, 제게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저희 H군은 S대학에 원서를 써 주십시오. 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어느 과든 원서만이라도 접수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벌로 인하여 받은 스트레스는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안되는 줄 알면서도 염치없는 부탁을 드려 죄송합니다.”
진학 상담 이야기도 꺼내기 전이다. 마치 단단히 각오하고 준비해 오신 듯 단숨에 긴 부탁을 끝내신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소원이니 원서만이라도 넣게 해 달라는 부탁을 뿌리칠 수도 없었다. 미리 준비해 오신 원서에 기록 사항을 채워 넣고, 교감 선생님께는 상황을 말씀드리고 결재를 득하여 아버님께 넘겨 드렸다.
입시철이면 서울 미아리 점쟁이 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소위 용하다는 이에게는 더욱 그렇다. 유명 사찰의 넓은 광장에는 그 많은 방석이 모자라도록 많은 불자들이 108배를 몇 번씩 되풀이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도발이 쎄다(세다)는 수유동의 모 수녀원 새벽 미사에는 주차장이 부족하여 인근 주택가에까지 주차하고 있어 민원이 야기되기도 한다. 그중에는 어느 고3 담임선생(?)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긴 시간 공부에 지쳐 졸고 있는 학생들이 안쓰러우면서도 야단을 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너희가 졸고 있는 이 시각에 부모님들은 너희의 장래를 위하여 무릎이 벗겨지도록 꿇어앉아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계신다. 그래도 졸음이 오느냐? 졸아서야 되겠느냐?”
어느 해의 일이다 입학원서 작성 업무를 위해 입시 자료들을 펼치자마자 N군이 바쁘게 어머니를 모시고 들어왔다. 어머니 말씀은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선생님! 어느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입학원서는 학교에서 제일 처음으로 써서, 대학은 동쪽에 있는 학교로 써달라고 하십시오. 그리하면 틀림없이 합격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시며 준비한 원서까지 내어놓으셨다. 나는 그 말대로 할 수 없었다.
“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그 점쟁이의 허무맹랑한 말을 믿을 수가 없고, 믿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여기 N군의 수능 자료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자료로 상세히 설명을 드렸지만 막무가내(莫無可奈)이시다.
3학년 담임 업무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이 입학원서를 쓰는 일이다. 그동안 고생해온 사랑하는 제자의 장래가 달린 일이니 밤을 새우면서까지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는 소중한 일이다. 발표된 수학능력시험 결과는 벌써 객관적으로 드러났고, 여러 해 동안 치러온 각 대학의 입학시험 결과도 일목요연하게 공개되었다. 그러니 낙방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턱대고 원하는 대학이라고 모두 들어줄 수도 없는 일이다. 이는 제자의 장래를 포기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몇 번을 고심하여 원서를 썼어도 낙방을 하는 경우가 있으니 참으로 난감하다, 모든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아 심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기도하고 또 간절히 기도하지만, 실패의 경우 이 또한 주님의 뜻이 아니었다는 심한 자괴감에 빠진다. 어떤 때는 낙방한 학생이 찾아와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기도 한다. 오죽하면 ‘선생님 X은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까지 있으랴. 그래도 “선생님 합격했습니다”라는 떨리는 목소리가 아픈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
글 _ 정점길 (세례자 요한, 의정부교구 복음화학교 교장)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 38년 동안 교직 생활을 했다. 2006년 3월 「한국수필」에 등단, 수필 동호회 ‘모닥불’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가톨릭 사회복지회 카리타스 봉사단 초대 단장, 본당 사목회장, 서울대교구 나눔의 묵상회 강사, 노인대학 강사, 꾸르실료 강사, 예비신자 교리교사, 성령기도회 말씀 봉사자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의정부교구 복음화학교의 교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