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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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안에는 숫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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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거나 이야기할 때, 형용사보다 명사를 더 많이 쓰면 똑똑하고 정확해 보입니다. 형용사보다 동사를 더 많이 쓰면 뭔가 추진력이 있어 보이고요. 그보다 더 강력한 것은 숫자와 통계입니다. 대화 중에 숫자를 잘 활용하는 상대를 만나면 괜히 움츠러들지 않던가요? 더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것만 같아서요. 그러니 논의나 토론에서 숫자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비교 우위를 점하게 되지요.


어린 날부터 사람 이름이나 고유명사를 잘 잊어버리곤 하던 저는 선배들이 “은귀 넌 고유명사 치매가 있는 거 아니냐?” 놀리곤 했어요. 하지만 제가 강한 부분이 있으니, 저는 형용사는 남들보다 더 다채롭게 알고 잘 기억해요. 명사보다는 동사, 동사보다는 형용사.


형용사를 동원하면 대상을 더 세심하게 묘사할 수 있지요. 세상이 더 풍요로워지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려면 면밀하게 관찰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그런데 숫자나 셈에는 약해서 업무상 필요한 보고를 할 때는 일부러 숫자를 달달 외워야 하는데, 돌아서면 금방 까먹어요. 형용사나 동사, 속담이나 문장은 일부러 외우지 않아도 귀에 쏙쏙 들어와 박히는데요.


모든 게 숫자로 매겨지고 통계로 재단되는 세상. 기술정보 시대의 풍경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세상에는 오직 숫자, 숫자만이 유일한 승자 같아요. 눈이 빨개지도록 문서의 숫자를 들여다본 지친 오후에 책을 읽다가 우연히 이런 구절을 읽었어요. 


“대상을 고요한 존재로 만드는 건 오직 사랑뿐이다. 마음 안에는 숫자가 없다. 언제나 하나, 그리고 하나, 그리고 하나일 뿐이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분명 셈하는 법을 모를 것이다.” 


소박하면서 아름다운 글을 쓰는 프랑스의 작가 크리스티앙 보뱅의 책 「세상의 빛」에서 만난 아름다운 구절!


아, 맞아요. 저는 고개를 들고 창밖을 바라봅니다. 노릿하게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에 숫자가 없어요. 시리도록 파란 겨울 하늘에도 숫자는 없네요. 이젠 볼 수 없는 그리운 아버지, 슬픔에 부쩍 수척해진 엄마, 내일 항암 주사를 맞으시는 삼촌, 먼 땅에서 억압에 항거하다 목숨을 잃은 이들, 굶주려 우는 아이, 죽음 직전까지 신성하고 맑은 마음으로 공무를 행한 어른. 이런 생각을 하는 이 순간의 기도에도, 이 마음에도 숫자는 없네요. 


아, 맞아요. 하느님은 오직 하나이시고, 우리 마음이 순수하고 맑아질 때 그 안에는 숫자가 없네요. 숫자는 눈에 보이는 것, 눈앞에 증명되는 것.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믿어야 할 것은 믿을 수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그러니 오늘, 숫자 없는 세상을 그려봅니다. ‘그게 천국이 아닐지’ 생각하며.


숫자에서 해방된 저녁, 하늘에는 가느다란 초승달이 떠 있고, 제가 좋아하는 은행나무는 벌거벗은 채 의연합니다. 건물을 나서며 겨울 어둠 속 싸한 공기를 마시며 걷는 저는 어쩐지 투명해집니다. 


이 순간, 저는 알 수 없는 사랑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신은 셈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염없이 돕고 사랑하는 것이겠지요. 오늘도 이 강퍅한 세상에 그런 성자들이 머물다 떠났겠지요. 때로 선(善)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며. 하지만 슬픔 속에서도 우리는 그 빛을 만나 다른 빛을 다시 밝힙니다. 숫자를 잊은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오늘의 구원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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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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