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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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시간도 사랑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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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강의하며 나는 늘 학생들에게 많은 숙제와 과제를 내주었다. 프로젝트도 빠지지 않았고, 시험은 대부분 주관식이었다. 답안지는 10장씩 이어졌고, 학생들은 손에 쥐가 날 정도로 서둘러 써 내려가야 했다. 문제 중에는 교과서에 없는 상황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는 질문도 꼭 포함했다. 단순히 외운 지식을 옮겨 적는 시험이 아니라, 생각하고 판단하는 연습을 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반응은 늘 거칠었다. “이 과목은 공부를 하나 마나입니다.” “가능하면 신청하지 말아야 할 수업입니다.” 이런 말들이 들려왔다. 실제로 수강 신청 기간이면 내 과목을 두고 고민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들의 부담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배움이란 원래 편안한 과정이 아니라는 생각을 쉽게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시간은 흘러, 그렇게 힘겹게 공부하고 시험을 치렀던 제자들이 사회인이 되어 20여 년 만에 길에서 나를 만나곤 한다. 그때 그들은 뜻밖에도 웃으며 이런 말을 건넨다. “교수님을 뵈면 학창 시절의 괴로웠던 기억이 먼저 떠오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때야 대학이 무엇인지, 공부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언제 들어도 마음 한쪽을 조용히 두드린다.


이 장면은 어린아이가 병원에서 주사를 맞는 모습과 닮았다. 아이는 병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긴장하고,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린다. 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온몸으로 저항한다. 그러나 주사가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 열은 내리고 통증은 사라진다. 아이는 그제야 아픔보다 회복을 먼저 경험한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재난과 고통 앞에서 자주 묻는다. 왜 하느님께서는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아픔과 시련을 허락하시는가. 왜 착한 이들이 먼저 무너지고, 선한 이들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다. 자유의지는 사랑 안에서만 온전히 드러난다. 만일 우리가 창조주의 뜻대로만 움직이는 기계와 같은 존재였다면, 거기에는 선택도 사랑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사랑을 강요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응답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


그래서 삶에는 설명되지 않는 고통의 순간들이 허락된다. 그 고통은 벌이기보다는 부르심에 가깝다. 지금 이 순간의 시야로 보면 슬픔은 불공평하고, 괴로움은 과도해 보인다. 그러나 인생 전체의 흐름 속에서 한 사건을 바라보면, 그 의미는 전혀 다르게 드러난다.


슬픔과 고통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게 하며, 사랑의 깊이를 넓히는 과정일 수 있다. 주사를 맞고 울던 아이가 건강을 되찾듯, 시험과 부담을 견딘 제자들이 삶의 힘을 얻듯, 우리의 아픔 또한 언젠가는 의미로 바뀌는 날을 맞이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러나 분명한 사랑으로 우리를 살리고 계신다. 지금은 아프고 버거워 보이는 시간일지라도, 훗날 돌아보면 그 시간 역시 은총의 일부였음을 고백하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믿음의 자리에서 바라본 삶의 깊이일 것이다.



글 _ 노봉수 야고보(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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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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