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석 신부
천주교창조보전연대 상입대표
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장
법대로 하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악마의 선택’이라 부른다. 권력과 핵산업계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신규 핵발전소(원전) 건설과 전력 공백,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시민들에게 종용한다. “전력 수요 증가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된다면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 찬성하십니까?”라는 식의 질문을 통해 여론조사를 했더니 80 이상이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 찬성했다는 것이 정부가 내세운 신규 핵발전소 추진 명분이다.(기후에너지환경부 미래 에너지 대국민 인식 조사, 1월 21일 발표)
‘전력수요증가’와 ‘탄소중립’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핵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는 전제로 찬성을 유도한다. 또 “안전한데 왜 반대하느냐?”며 응답자에게 찬성을 강요한다. 미국 쓰리마일·구 소련(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경우와 같은 사고 위험성과 고준위 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을 처리할 부지가 없는 현실, 막대한 건설 비용, 해당 지역 주민과의 갈등, 수도권과 대도시로 전력을 공급하는 데 필요한 고압 송전선로 건설과 이에 따른 각 지역의 갈등을 알리며 신규 핵발전소 건설 문제를 질문했다면 이번과는 다른 답이 나왔을 것이다.
정부와 핵산업계가 이야기하는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반도체 산업단지에 필요한 전력 공급 문제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중립을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핵발전소는 대안이 아니다. 부지 선정부터 상업 운전까지 14~15년이 걸린다. 지금 당장 전기가 필요하다면 핵발전소는 선택하지 말아야 할 대안이다. 오히려 1~2년 안에 설치와 전력 공급이 가능한 태양광 발전 등 친환경 재생에너지가 답이다.
정부와 핵산업계는 태양광발전소는 간헐성 때문에 안정적이지 않고, 핵발전소가 안정적 공급원이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핵발전소 확대가 전 세계 추세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지난해 11월 월간 전력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미국에서 추가 건설될 발전 설비 용량(순증가분)의 약 99.2는 태양광·풍력·배터리저장장치(ESS)가 차지할 전망이다. 2024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핵발전소 설비는 약 7기가와트 증가한 데 반해, 재생에너지는 700기가와트 이상 늘었다. 대부분 태양광·풍력 발전이다. 재생에너지가 전 세계 신규 발전 설비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세계는 핵발전소가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선택하고, 재생에너지는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핵발전소 주변 지역은 토지거래가 어렵다. 핵발전소의 위험성 때문에 다른 산업체가 자리 잡기 어렵다. 암 등 악성 질환에 시달리는 지역 주민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많다. 일부 주민들은 차라리 마을이 핵발전소 신규 부지로 수용돼 보상을 받고 이곳을 떠날 수 있길 바라는 실정이다. 편안하게 전기를 사용하는 이면에 우리는 하늘과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죄를 짓고 있다.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동을 그만 멈춰야 한다. 핵발전소는 이제 그만 지어야 한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세의 인도로 죽음의 땅 이집트를 벗어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