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생을 마감하는 ‘조력 자살’이나 ‘안락사’에 대한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꼬리표처럼 붙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의료비’입니다. 개인의 자유나 죽음의 질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서구와 달리 한국 사회에서 생명 윤리에 대해 교회가 목소리를 높이면 어김없이 의료비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합니다. 폭탄 같은 치료비를 교회가 내주냐고 말입니다. 특히 그 불만은 의료비 취약층인 저소득 계층에서 크게 들립니다
일을 멈추기가 어려운 저소득 계층에서 환자를 직접 간병하는 일이 어려운 데다 만약 가족 중에 누가 치매라도 걸리면 더 큰 어려움에 놓이게 됩니다. 간병인을 고용한다고 해도 한 달에 300에서 400만 원 정도 하는 간병인 비용은 저소득층에게는 큰 부담입니다. 더욱이 저소득 계층이 암보험이나 실비보험처럼 사보험을 준비하지 못한 경우도 많아 의료비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 됩니다. ‘치료비 파산’, ‘간병 지옥’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의료복지에 사각지대가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조력자살에 관한 논쟁은 의료복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 일부에서 제기하는 말기 암 환자나 중증 치매 환자 연명의료 중단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환자 본인이 아닌 가족 서명만으로도 연명의료 중단을 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시도의 배경에는 인권보다 의료비 절감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존엄사’라며 마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듯이 오해를 가져오는 단어의 사용 뒤에는 고령화 시대에 폭증하는 공공 의료를 ‘쓸모 없어진 사람’에게 쓰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정부는 의료비 부담을 절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올해 말부터 요양병원의 중증 환자를 중심으로 건강보험으로 최대 70까지 간병비를 지원해 주는 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합니다. 또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마련하여 환자가 개인적으로 간병인을 두지 않고 병원의 전담 간호 인력으로 24시간 환자를 돌보는 서비스를 점차 늘려갈 계획입니다. 시행 초기이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특히 공동체의 아랫목까지 온기가 느껴지기에는 크게 미흡합니다. 또한 생의 마무리를 존엄하게 할 수 있도록 가정과 지역사회의 돌봄 체계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죽음을 자주 고민합니다. 스스로 원치 않는 죽음으로 우리 사회가 몰아갑니다. 자살률 1위인 나라의 국민은 살인적인 경쟁으로 스스로 죽거나 치료비가 없어 죽음을 고민합니다. 모두 우리 공동체의 비극입니다.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존엄한 인격체가 아닌 비용으로 바라보는 우리 공동체가 지닌 물질주의가 비극의 바탕에 있습니다. 생명이 아닌 죽음의 문화가 번지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 치료비 파산, 간병 지옥 >입니다. 죽음이 아닌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우리 공동체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