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0일
세계교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글로벌칼럼] 구식 모델을 정리해야 하는 아시아 가톨릭 언론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가톨릭 저널리즘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오랫동안 신중함과 순명, 생존의 본능 속에서 형성돼 온 가톨릭 언론은 이제 교회 내부 소식을 안전하게 기록하는 데 머물 것인지, 아니면 공적 영역에서 복음적 사명을 수행하는 존재로 거듭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가톨릭 매체는 주로 내부 소식지 역할을 해왔다. 본당 행사, 주교 인사, 축일 강론, 공식 성명 등을 기록하는 것이 주된 기능이었다. 이런 접근은 한때는 타당했다. 소수 종교라는 맥락 속에서 이러한 저널리즘은 가톨릭 정체성을 지키는 데 기여했다. 침묵과 절제, 신중함은 흔히 ‘현명함’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급격한 사회 변화와 디지털 환경의 확산, 그리고 점점 더 교육 수준이 높아지는 신자 공동체 속에서 이 오래된 모델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오늘날의 가톨릭 독자는 단순한 본당 신자가 아니라 시민이자 직업인이며, 세계 뉴스를 비판적으로 소비하는 독자다. 이들은 탐사보도와 데이터 저널리즘, 다양한 시각을 일상적으로 접하며, 교회 언론에서도 경건한 보호막이 아니라 정직함과 깊이, 현실적 연관성을 기대한다.


가톨릭 저널리즘이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 그 결과는 무관심으로 돌아온다. 아시아의 많은 가톨릭 주간지는 온라인 매체로 전환했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신자들의 삶과 맞닿은 내용을 제공하지 못해 독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은 일부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오래된 오해다. 곧 언론인은 본질적으로 스캔들을 좇는 존재이며, “나쁜 뉴스가 팔린다”는 생각이다. 한 고위 성직자가 “기자들은 논란을 원한다”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교회 관련 보도가 선정적으로 흐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가톨릭 기자들이 지나칠 정도로 절제하기 때문이다.


교회 운영의 실패, 재정의 불투명성, 권위 남용, 사목적 방임과 관련된 이야기는 과장되기보다는 오히려 완화되거나 지연되고, 조용히 묻히는 경우가 더 많다. 일치와 순명을 명분으로 한 자기검열이 일종의 기본 태도가 돼버렸다. 그 결과는 화합이 아니라 신뢰의 조용한 붕괴다. 특히 제도적 회피에 민감한 젊은 세대 신자들 사이에서 그 영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여기에서 진짜 질문은 가톨릭 언론이 충성적이어야 하는가, 비판적이어야 하는가가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이분법이다. 더 깊은 질문은 ‘충실성’이다. 곧 진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복음에 대한 충실성이다. 초대 교회는 결코 스캔들 없는 공동체가 아니었다. 사도행전은 갈등과 실패를 기록하고 있다. 성 바오로는 성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했다. 책임성은 배신이 아니라 공동체적 회개의 일부로 여겨졌다.


선택은 분명하다. 가톨릭 저널리즘이 기관지로 남아 예의 바르고 예측 가능하지만 점점 외면받는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책임 있는 용기를 지닌 공적 플랫폼으로 성숙할 것인가다. 이는 정직한 질문을 던지고, 상처 입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경외와 엄정함을 함께 지닌 보도를 의미한다.


아시아에서의 저널리즘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그것은 사명이다. 그리스도인이 소수인 사회, 종교적 조화가 섬세하게 유지되는 사회에서 가톨릭 기자는 신앙과 진리, 공적 삶이 교차하는 신성하지만 위태로운 자리에 서 있다. 선교적 저널리즘은 선교사가 무엇을 했는지 알리는 공지와 사진을 넘어선다. 오히려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누가 영향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변두리에서 하느님이 어디에 현존하시는지를 비추어야 한다.


아시아는 이주민과 농장 노동자, 난민과 원주민의 대륙이다. 이들의 신앙은 종종 요란함 없이 이어진다. 그들의 이야기를 충실히 전하는 일은, 구호가 아닌 존재와 증언을 통한 복음화다.


그러나 사명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교회 안에서 질문은 종종 불충으로 오해되고, 침묵은 순명으로 보상받는다. 하지만 복음은 불의 앞에서의 침묵을 칭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위로만 하지 않았고, 맞섰다. 사랑은 회피가 아니며, 자비는 은폐가 아니다.


저널리즘이 참으로 사명이라면, 양성과 신뢰가 필수적이다. 가톨릭 기자들에게는 의심이 아니라 신학적 토대와 윤리 교육, 제도적 신뢰가 필요하다. 시노드적인 교회는 또한 소통하는 교회여야 하며, 대화와 교정, 성장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궁극적으로 사명으로서의 저널리즘은 희망의 행위다. 진리가 교회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련시킬 것임을 믿는 것이다. 불편하더라도 빛은, 평화로 위장한 어둠보다 낫다는 믿음이다.


또한 아시아교회는 언론을 확성기가 아니라 등불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 등불은 작을지라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등경 위에 놓이고 정성스러운 돌봄을 받아야 한다.



글 _ 조셉 마실라마니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에서 활동하는 가톨릭 언론인이다. 40여 년 넘게 다양한 언론사에서 일하며 사회와 경제, 정치를 비롯해 종교 분야에 관한 글을 썼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02-10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2. 10

이사 50장 10절
빛이 없이 어둠 속을 걷는 자는 주님의 이름을 신뢰하고 자기 하느님께 의지하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