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한 카시아노(Johannes Cassianus, 360?~435)라고 하며, 오늘날 루마니아인 스키티아(Scythia Minor)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청년 시절에는 팔레스티나에 있는 베들레헴 수도원에서 공동생활을 하였고, 사막 교부들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열망에 이집트로 건너가, 여러 수도원을 방문하거나, 은수자들과 수도승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총대주교를 만나서, 그분에게 부제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이단과 맞서 싸우던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인이 모함을 받아 귀양살이를 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분을 변호하는 편지를 전하러 로마 교황님에게 갔다가,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게 됩니다. 이후 저는 두 개의 수도원을 세우고, 동방 수도원의 영성 전통을 서방 수도원 생활에 적응시키고자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저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은총이 가장 우선하지만 영적인 삶에서 인간의 노력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펠라기우스주의란 이단으로 오해받아(인간의 노력만을 강조하는 것) 고난과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프랑스로 이주하여 그곳에 있는 수도원에서 살다가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나중에 오해가 풀려서 제가 죽은 이후에는 성인이 되었더군요!
저는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살았지만, 오해와 모함도 받고 그래서 절망이나 실망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가 신앙을 잃지 않고 영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열심히 수련하여 ‘마음의 순수함’을 얻고자 노력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음의 순수함이란 우리의 마음이 오로지 하느님을 향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이 크게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여러 가지 ‘수단’과 마음의 순수함이라는 ‘목표’를 구별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마련된 여러 가지 장치를 중요시하다가 ‘목표’를 잊어버릴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는 모든 실천적인 덕들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하느님을 향해 가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잘못하면, 이 수단이 목표가 되어서, 하느님을 향하지 않는 기도에 매진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그렇다고, 마음의 순수함을 얻기 위한 ‘수단’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사막의 은수자들은 마음의 순수함을 얻기 위해서 ‘단식’을 중요시하였습니다. 이는 먹는 것을 절제함으로써 죄짓기 이전의 하느님과의 일치를 기억하고 순수한 상태를 확인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며, 이러한 실천적 행위들은 확실하게 우리의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노력할 때에는 반드시 ‘자기 점검’이 필요합니다. 즉 우리 내면을 하나의 책처럼 생각하고, 읽어보며, 해석하며, 점검해야 합니다. 이는 곧 자기식별로서, 마음 안에 어떤 불순한 생각이 들어오고 나가는지 점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기점검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마음의 순수함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팔죄종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죄를 8가지로 봅니다. 교만(Pride), 음욕(Lust), 식탐(Gluttony), 분노(Wrath), 슬픔(Sadness), 탐욕(Avarice), 나태(Accidie), 허영(Vainglory)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지속적인 자기성찰을 통해서 마음의 순수함을 유지한다면, 다음과 같이 영적인 성장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첫째, 내면의 정화가 이루어집니다. 마음의 순수함이란 내적 잡념과 욕망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집중하는 상태를 의미기 때문입니다.(요한 카시아노, Conferences,제10장, 참조) 둘째, 하느님을 향해 온전히 집중할 수 있습니다.(요한 카시아노, Institutes,제2권, 참조) 셋째, 참된 자아를 발견하고 하느님과의 일치를 경험할 수 있는 관상적 삶으로 나아갑니다.(요한 카시아노, Conferences, 제14장, 참조) 넷째, 우리의 영적인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을 직접 바라볼 수 있는 천상적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요한 카시아노, Conferences, 제1장, 참조)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이 구절은 예수님의 행복선언 중 하나로, 마음의 순수함을 통해 하느님을 볼 수 있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사도 바오로가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약속들을 받았으니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이 하여, 하느님을 경외하며 온전히 거룩하게 됩시다”(2코린 7,1)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분 모두 열심히 자신을 점검하는 삶을 통해서, 마음의 순수함을 얻으시고,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직접 뵙는 영광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글 _ 이수완 교수 (로마노, 수원가톨릭대학교 하상신학원 영성신학)
2014년부터 수원가톨릭대학교 하상신학원에서 영성신학을 강의하고 있다. 2019년부터 수원교구 시복시성위원회의 순교영성 강학에서,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 디에고 데 판토하의 「칠극」 등을 영성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및 강의를 하고 있다. 2012년부터 한국가톨릭 신앙인들의 영적인 삶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각 교구 및 본당에서 ‘성인들의 삶과 영성’ 강의를 지속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성인들의 영적인 가르침을 소개하는 일을 소명으로 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