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오네.’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새벽길. 주일 새벽 미사를 부탁받고 열심히 차를 몰고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종종 미사를 부탁받을 때면 습관처럼 미사 한 시간 전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집을 나선다. 미리 도착하면 자동차에서 다시 한번 강론 원고를 외우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잠시 숨도 돌릴 수 있다. 그러나 그날은 그런 숨 돌릴 시간은커녕 난생처음 미사 시간을 펑크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첫 두려움을 느껴보았다.
“쾅!”
신호 대기 중 순간 뒤에서 불이 번쩍이더니 정신이 번쩍였다. 너무나도 평범한 그날의 새벽은 그렇게 평범하지 않았다.
그 순간 무의식적으로 목에 있던 로만칼라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것은 어떤 선배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닌 그저 본능이었다. 상대방이 100 과실이라 하더라도, 내가 100 과실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앞으로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그렇게 행동할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행동이 아닌 또 다른 본능은 걱정이었다. ‘아…, 미사 드리러 가야 하는데.’
자동차를 나오려고 했으나 팔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 긴장을 많이해서 그런 거라 생각하고 다시 힘을 내어 밖을 나와 우산을 폈다. 상대방을 살펴보니 에어백이 터진 채 그 속에서 힘겨워하는 아저씨를 발견했다. 대신 밖에서 차 문을 열어드린 뒤 괜찮으시냐고 여쭙자 역시나 연거푸 죄송하다는 말씀만 건네신다.
참으로 빠르다. 어느새 레커차와 주변을 순찰하던 경찰 그리고 잠시 뒤 구급차가 도착했다. 아저씨를 구급차에 태우자 한 구급대원이 같이 병원에 가시지 않겠냐고 묻는다. 그 순간 레커차보다 분주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사고를 당한 나 자신이었다. 미사를 부탁한 본당 신부님에게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으며, 사무실도 신호가 갈 뿐이었다.
열심히 택시를 호출하지만 시간이 이른지 호출이 되지 않는다. 어느새 경찰과 구급차는 사라졌고, 담배를 피우며 자신들이 알고 있는 공업사에 차를 옮기고자 자꾸 옆에서 설명만 하는 레커차 기사들과 구경을 하던 몇 자동차만이 주변에 있을 뿐이었다.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하얘졌다.
‘손님 신부가 미사를 펑크를 낸다고! 더욱이 주일 미사를!’
그때 떠올랐던 생각은 레커차 기사에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당신들이 원하는 공업사에 갈 테니 그리고 요금을 더 지불할 테니 우선 성당을 가자고 부탁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다시 밀어 넣었던 로만칼라를 끼워 넣은 뒤 레커차 기사에게 설명을 하던 도중 어떤 구경하던 남자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신부님이세요? 괜찮으시면 제가 모셔드리겠습니다.”
그분은 끝까지 자신이 어디 성당에 다니는지만 말씀하신 채 성함과 세례명은 밝히지 않으셨다. 축축하게 젖은 머리와 양복. 그래도 미사 30분 전이라 고해성사도 늦지 않았다. 그제야 정신이 들어 머리를 손으로 털어내며 짧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았다.
무엇보다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고, 나 자신이 사제가 맞긴 맞는구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도 났다. 사죄경을 외우며 강복을 드리는 데에도 어깨가 저려 힘이 들지만 그 순간 미사를 제일 걱정했으니 말이다. 팔과 다리가 떨린 채 미
사를 드리며 공지사항 때 신자분들에게 짧게 여쭤보았다.
“오늘 제가 이 미사를 오던 도중에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을까요?”
신자분들은 어떤 주저함과 망설임 없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해 주셨다.
“미사 시간이요.”
그렇다. 사제이든 신자이든 사제가 미사 시간에 늦으면 안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어떠한 사제이든 어떠한 신자이든 누구나가 당연히 생각하는 것이다. 그 당연한 생각을 한다고 해서 대견한 것도 아니며,
그 당연한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 하여도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 일은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이다.
알코올중독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늘 하루도 단주하는 일이다. 알코올중독자가 단주를 했다고 해서 대견한 일도 아니며, 누구에게 칭찬받을 일도 아니다. 그러나 하루하루의 단주를 성공했을 때,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A.A. 모임을 마치며 바치는 기도)에서처
럼 자신이 믿는 신에게 감사를 드린다.
하루를 넘어 이틀을 단주했을 때, 자신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이틀을 넘어 또 하루를 건널 때, 왜 단주를 해야 하는지 느낀다. 그것은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일을 하지 못했을 때 자신
의 존재 의미는 그 자체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글 _ 이중교 신부 (야고보, 수원교구 사회복지회 둘다섯해누리 시설장, 사회복지학 박사)
2009년 사제품을 받았다. 2021년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여성 알코올의존자의 재발과 회복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장애인 재활시설 둘다섯해누리 시설장이며 서강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