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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시작 : 민족의 대이동

[월간 꿈CUM] 예수, 그 이후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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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족 전사 부조. 크로아티아 트로기르 성 로브로 대성당


고대 중국인들은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 살고 있던 우리 조상을 ‘동이’(東夷)라고 불렀다. ‘동쪽 오랑캐’라는 뜻이다. 중국인들은 동이뿐 아니라 서쪽에 사는 오랑캐를 서융(西戎), 남쪽 오랑캐를 남만(南蠻), 북쪽 오랑캐를 북적(北狄)이라
고 불렀다.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주변 민족들을 모두 오랑캐로 인식한 것이다. 남 말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도 중국 사람과 일본 사람을 낮잡아 각각 ‘되놈’과 ‘왜놈’으로 불렀다.

서기 300년대 후반, 당시 로마 제국 사람들이 낮잡아 보던 변방 오랑캐들이있었다. 고트족(Goths, 동게르만족)이 그들이다. 교양과는 담을 쌓고 지낸 이들은 오늘날 독일, 폴란드, 스페인, 프랑스, 북유럽, 우크라이나 등의 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살아가고 있었다. 여기서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 색슨족, 프랑크족과 서고트족, 동고트족의 역사까지 언급하면 이야기가 길어지기에 이 글에서는 고트족으로 통칭하기로 한다.

4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이빨이 하나둘 빠지기 시작한 로마는 수시로 국경을 침범하며 소란스럽게 하는 이들 오랑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로마는 이들을 때로는 무력으로 제압하고, 때로는 유화책으로 살살 달래가며 그럭저럭 지내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그동안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오랑캐가 등장한다.

악마는 지옥에서만 산다? 아니었다. 유럽인들의 눈에 그들은 지옥에서 탈출해 지상으로 올라온 악마였다. 악마가 아니라면 적어도 악마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지상으로 올라온 죽음의 사자(使者)였다. 4세기 로마 역사가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Ammianus Marcellinus, 325?~391?)는 그 미지의 종족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두 발로 움직이는 야수다. 날고기를 요리도 하지 않고 뜯어 먹는다. 납작한 얼굴에 까만 눈을 가졌고, 수염은 거의 없고, 키는 작다. 쥐 가죽을 이어붙인 옷을 걸치고, 그것을 빨지도 않고 찢어질 때까지 입기 때문에 늘 악취를 풍긴다. 전쟁에서도 말에서 내려 싸우기를 극도로 싫어한다. 다만 말을 탄 훈족은 말에 붙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과 한 몸이 된다. 그들의 집은 이륜 소달구지이고,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자식을 낳는다. 이들이 두려운 것은 달리는 말 위에서 화살을 명중시키는 고도의 기술 때문이다.”

암미아누스는 이 무시무시한 오랑캐를 ‘훈족’(Hun)이라고 기록했다. 훈족은 오늘날 중앙아시아의 초원 지역에 거주하였던 유목 기마민족이었다. 일부 학자들은 중국 고대사에 나오는 흉노(匈奴)족과 관계가 있다고 보기도 하는데, 정확하지 않다. 어쨌든, 이들은 공포의 존재였다. 역사가 암미아누스는 다음의 이유를 들어 그들이 왜 두려움의 화신인지 설명했다. 내용이 긴데, 요약해서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이들은 목적지가 없었다.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하니 대응이 힘들다. 둘째, 이들은 집에 대한 소유욕이 없었다. 집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착하지 않고 늘 이동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정착지를 제공하는 등 고전적인 회유책은 통하지 않는다.

셋째, 이들에게는 법이 없었다. 부족장의 임기응변식 지휘를 따를 뿐이다. 넷째, 이들은 절대신을 섬기지 않았다. 악행을 저지르면 지옥에 간다는 협박이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다섯째, 이들은 내일 먹을 식량을 비축하지 않았다. 목적지 없고, 집 없고, 말도 통하지 않으며, 신앙에 호소해도 귓등으로 흘리고, 오직 약탈을 생계의 방편으로 삼는 사람과 대화를 통해 협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그들은 막강한 전투력을 가졌다.

이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유럽 땅으로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왜? 그 이유는 모른다. 물론 인류 역사에 있어서 대규모 이주는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항상 늘 그래왔다. 원래 인간은 정착하지 않았다. 에덴동산이 그랬고, 아브라함이그랬고,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다. 바이킹, 콜럼버스, 아메리카 대륙 약탈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는 이동하는 인간이 만들어온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모든 이주에는 각각의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4세기 훈족이 유럽 땅으로 밀고 들어온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연구마다 달라 어떤 것을 신뢰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근 들어서는 기후위기 때문이었다는 추정이 대체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쨌든 오랑캐 훈족은 이동했고, 이 이동 때문에 일차적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은 앞에서 언급한 로마 제국 변방에 살고 있던 또 다른 오랑캐, 고트족이었다. 훈족에 대항하자니 힘이 달렸고, 더 깊은 땅으로 숨자니 척박한 땅 때문에 생계가 막막했다. 어쩔 수 없이 고트족은 살기 위해 로마 제국 땅 안으로 침범해 들어왔다.

도미노처럼 훈족이 고트족을 밀고, 고트족이 로마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전성기 로마는 이런 도미노 붕괴를 막을 힘이 있었지만, 4세기 말 로마는 그렇지 않았다. 몇몇 유능한 황제가 고트족을 일시적으로 평정하기도 했지만, 훈족이 고트족의 뒤를 쫓아 직접 유럽 땅 깊숙이 들어올 즈음의 로마는 산소 호흡기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상태였다. 전성기 로마의 1개 레지오(군단, legio) 규모는 6000명 수준이었지만, 4세기 말에는 2000명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러자 고트족도 로마를 만만하게 보기 시작했다. 훈족에게 뺨 맞고, 로마에게 화풀이하는 격이다. 고트족은 378년 오늘날 불가리아, 튀르키예, 그리스 국경이 맞닿는 지역에서 로마군을 대파했다. 이것이 서로마 제국 멸망의 서막을 연 아드리아노플 전투(Battle of Adrianople)다. 마침내 고트족은 410년 수도 로마까지 약탈한다. 로마가 이 지경이 될 줄은 그 누가 알았겠는가. 여담이지만,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지상의 왕국이 아닌, 하느님 나라에 희망을 두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신국론」을 저술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나마 이렇게 혼란한 상황에서도 교회가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고트족이 야만족이긴 했지만, 종교적으로 설득 가능했기 때문이다. 고트족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 물론 주교와 사제에게 박해를 가한 일도 있었지만, 그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고트족이 칼을 겨눈 대상은 주로 로마 황제와 장군들이었다.

그런데, 고트족의 뒤를 따라 유럽 땅으로 직접 밀고 들어온 훈족은 그리스도교에 동화되지 않는 진짜 야만족이었다. 이번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고트족 뺨때린 훈족이 이제 로마까지 와서 뺨 때릴 태세다. 훈족은 고트족처럼 로마 황제와 장군들을 죽이는 선에서 끝내지는 않을 것이다. 교황과 사제들을 죽이고, 교회 자체를 붕괴시킬 것이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서기 452년 훈족의 수장 아틸라(Attila, 406~453)와 가톨릭교회의 수장 레오 1세 대교황(St. Leo Magnus I, 440~461 재위)이 오늘날 이탈리아 만토바에서 정상 회담을 갖기로 했다. 말이 회담이지 우리나라의 ‘삼전도의 굴욕’에 비견할 만한 그런 자리였다.

멀리서 레오 1세 대교황이 서너 명의 수행원만 대동한 채 말을 타고 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아틸라가 수많은 훈족 병사의 호위를 받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신의 채찍’이라는 별명답게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아틸라는 교황이라는 작자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아틸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놀라서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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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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