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새 학년, 새 학기 시즌이 돌아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는 어릴 때부터 아이 친구 관계를 위해 부단히도 애를 쓰지요.
저도 아이의 친구 관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외동이라 사회성을 위해서라도 아이의 친구가 절실했지요. 그래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 일부러 엄마들 모임에 나가기도 하며 신경을 썼지만 아이의 교우관계는 저의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같이 어울리길 바랐던 아이는 우리 아이보다 다른 친구와 더 잘 놀며 어울렸지요.
어떻게든 아이가 같이 놀고 싶어 하는 친구와 친구 관계를 만들어주려고 일부러 아이 엄마와 약속을 잡고 자리를 만들어봐도 그때뿐이었습니다. 학교로 돌아가면 그 친구는 또 우리 아이를 외면하며 자기와 잘 맞는 친구를 찾아갔지요. 그렇게 끼리끼리 모이는 또래 관계가 초등학교 3,4학년부터 확연히 드러나 5, 6학년이면 소그룹의 또래 관계가 훨씬 견고해집니다. 대신 균열도, 갈등도 자주 일어납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교우관계가 이제 목숨만큼 중요해집니다. 함께 밥을 먹을 친구, 교실 이동 수업 때 함께 다닐 친구, 시험이나 체험학습을 마치고 함께 떡볶이, 마라탕을 먹으러 갈 수 있는 친구, 부모님과의 불화를 하소연할 수 있는 친구, 나에 대해 누군가 안 좋은 이야기를 할 때 내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친구, SNS에 올릴 챌린지 동영상을 찍기 위해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호흡을 맞춰줄 친구, 이성 친구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들어줄 친구, 그래서 친구는 이제 아이들에겐 죽고 살고의 문제가 됩니다.
저희 아이도 친구 문제로 얼마나 홍역을 치렀는지 모릅니다.
특히 중학교 시절, 옆에서 봐주기에도 정말 애타고 안타까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무리 친구 같은 부모가 되어주려고 애를 써도 아이의 그 갈증을 채워줄 수는 없었습니다. 기대와 바람대로 되지 않았던 교우관계, 그로 인해 남은 상처와 상흔. 가슴 졸이며 다 죽어 가는 아이를 겨우 살려놓았다 싶었는데 문제는 아이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때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때였습니다.
관계 속에서 거절의 경험, 관계의 좌절 경험이 많은 아이는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겠다며 고등학교 진학을 거부했지요. 그런데 막판에 반전이 있었습니다.
역시 친구! “같이 가자”, “함께 가자”는 친구가 있어서 아이가 마음을 돌렸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서로 다른 학교로 진학했지만. 그때 느낀 건 부모가 살리고 친구가 이끈다는 것이었습니다. 청소년기엔 부모 이상으로 친구가 중요한 일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청소년기라서가 아니라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자기 확장의 동기를 가지고 있고, 혼자서가 아니라 관계를 통해 자기 확장을 도모하는 존재라 ‘친구’는 평생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아이의 교우 문제를 제대로 이해해 주지 못해 갈등이 많았던 시절, 그 고비를 넘어가며 제가 아이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출처: 월간 꿈CUM
‘다음 생애에 한 번 더 엄마 딸로 와 줄래? 다음 생애엔 더 좋은 엄마가 되어줄게’라고 했지요. 그런데 딸이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다음 생애엔 엄마의 친구로 만나고 싶어. 내가 화장도 해주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으러 다니면서 그렇게 친구로 만날래’라고 말이죠.
그땐 그 말이 그저 감동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친구’란 그 말에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친구란, 함께 놀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며 서로를 알아주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부디 오늘은 당신의 자녀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글 _ 최진희 (안나, 서울대교구 문래동본당)
국문학을 전공하고 방송 구성작가로 10여 년을 일했다. 어느 날 엄마가 되었고 아이와 함께 가는 길을 찾아 나서다 책놀이 선생님, 독서지도 선생님이 되었다. 동화구연을 배웠고, 2011년 색동회 대한민국 어머니동화구연대회에서 대상(여성가족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휴(休)그림책센터 대표이며, 「하루 10분 그림책 질문의 기적」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