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사건 파일에서 드러나
미국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몰락시키기 위해 모의한 정황이 공개됐다. 미국 CNN은 2월 14일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에 대한 사건 파일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그림자 책사’로 알려진 스티브 배넌과 엡스타인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위를 실추하고자 도모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모의 정황은 미 법무부가 1월 약 350만 페이지 분량으로 공개한 엡스타인 사건 파일로 드러났다. 사건 파일에는 2019년 배넌과 엡스타인 사이 오간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사건 파일에 따르면, 2019년 6월 배넌은 엡스타인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배넌이 무너뜨리고자 한 대상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외에도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유럽연합이 포함됐다.
그 배경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 민족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 이민자 보호를 강조했던 행보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지닌 포퓰리즘적 민족주의와는 늘 대척점에 있었던 인물이다. 민족주의는 본래 민족을 구성하고 통합하며 민족 단위의 국가 형성을 위한 정치사상으로, 국가적 위기에서 국민 통합을 도모하는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최근 민족주의는 인종차별, 이민자 배척 등의 극우 정치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 바티칸뉴스가 ‘포퓰리즘적 민족주의’를 규탄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하자, 배넌은 이를 엡스타인에게 공유했다. 엡스타인은 이를 두고 존 밀턴의 시 ‘실낙원’의 한 구절 “천국에서 시중드느니, 지옥에서 다스리는 편이 낫지”라는 문구를 인용해 답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측근으로 꼽히는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는 CNN에 “배넌의 메시지는 전략적 목적을 위해 영적 권위와 정치적 힘을 결합하려는 욕망을 보여준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줄곧 이런 결합에 저항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메시지들은 단순한 적대감을 넘어 신앙을 무기로 도구화하려는 시도를 드러낸다”면서 각별한 주의를 요구했다.
한편 현재 미국을 뒤흔들고 있는 엡스타인 사건은 정계 인사 성접대, 다단계 수법의 성매매 알선, 미성년자 성착취 등이 얽혀 국제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 같은 범죄를 알면서도 은폐했다는 의혹도 제기되는 가운데 지난해 11월 미 연방 의회는 엡스타인 수사 자료를 공개하도록 한 ‘엡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을 가결했다. 이에 따라 미 법무부는 최근 350만 페이지에 달하는 사건 파일을 공개, 파일에 이름이 거론되는 인물마다 엡스타인과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등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