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봄이 내리는 길목, 아버지 산소에 들렀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책을 읽었어요. ‘불안 속에 불안을 견디는 힘’을 지닌 소설, 새해 이상문학상을 받은 「눈과 돌멩이」라는 작품이에요. 제목이 익숙하고 다정한 ‘날 것’으로 되어 있어서 더 이끌렸던 것 같아요. 금방 녹는 연약한 눈과 단단한 돌멩이가 서로 어떻게 엮일까?
작가는 자신의 필요로 쓴 소설이라고 했는데, 따지고 보면 글은 강요나 요청이 아니라 자기 필요에 의해 쓰게 될 때 절실하고 정직하고 담백한 이야기로 완성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그렇거든요. 또박또박 어김없이 돌아오는 칼럼이 부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슬픔과 함께하는 지금의 제게는 꼭 필요한 의무라서, 마감 기한이 있는 이 지면이 아니었다면 지난 5주 간 저의 나날은 훨씬 더 힘들었을 것 같거든요.
이 소설은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예요.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남은 두 사람이 떠나는 여행을 그리는 소설에서 애도는 작품의 큰 축을 차지하네요. 애도란 것이 이론처럼 차곡차곡 순서대로 순수하게 정화되는 과정이 아니란 것을 저 또한 요즘 매일 경험하고 있는데요. 어제는 일상으로 잘 복귀한 것 같아서 ‘아, 이 회복력이란!’ 속으로 대견해하다가, 오늘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어떤 기억에 무너지는 일의 반복. 애도는 그렇게 끝없이 켜켜이 숨겨진 과거의 먼 기억을 돌아 알 수 없는 제 자신의 심연과 만나는 일이네요.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돌멩이를 생각했어요. 제게도 기억나는 돌멩이가 몇 있어요. 언젠가 성지순례를 간 이스라엘 갈릴래아 호수에서 주워 온 동글동글한 돌멩이 하나. 기도할 때 그 돌을 만지면 늘 힘이 나곤 했어요. 그리고 지난 10월, 부모님과 함께 부산 바닷가에 가족여행 갔을 때, 아버지가 주신 돌멩이 둘. 그날 아버지는 고집스레 혼자서 해안의 높은 바위에 오르셨는데요. 기우뚱하며 바위에 오르시는 아버지를 보고 동생과 제가 놀라서 따라갔는데, 아버지는 저희 손도 뿌리치시고 혼자 바위에 올라 먼바다를 응시하셨어요. 그때 아버지는 예쁜 돌멩이들을 몇 주워서 저희 네남매에게 골라 가지라고 했고, 저는 잘생긴 돌멩이 둘을 서울로 가지고 왔고, 작고 단단한 돌멩이 둘은 부모님 댁 거실에 놓아두었지요.
작가는 돌멩이를 쥐어보는 일이 글쓰기라고 했는데, 제게 돌멩이는 이제 상실을 견디는 기도가 되었네요. 사람이 떠나도 끝나지 않는 관계의 책무를 생각하게 하는 돌멩이, 단단한 돌멩이. 손에 쥐는 순간 금방 녹아내리는 눈처럼 무엇 하나 정확하게 움켜쥘 수 없는 우리의 삶, 콩콩 가벼이 두드렸을 뿐인데 와장창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부서지기 쉬운, 알 수 없는 이 세계. 여기서 우리가 기대는 것은 고작 이렇게 작고 단단한 돌멩이 정도가 아닐까.
그래도 언제든 쥐어볼 수 있는 돌멩이가 있다는 건 또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지나는 길에 귤을 건네주고 간 친구의 호의도, 잘 있느냐는 짧은 안부 인사도, 몰래 전하는 기도도 그런 돌멩이가 아닐지, 오늘도 작고 단단한 십자가 옆 돌멩이를 바라보며 이 글을 씁니다.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