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두 번째부터) 성필립보생태마을 원장 황창연 신부와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 교구 중문본당 주임 고병수 신부가 2월 28일 ‘중문 치유와 평화의 기념성당’ 기공식에서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민간인 71명이 희생된 학살터에 치유와 평화를 기념하는 새 성전이 들어선다.
제주교구는 2월 28일 ‘제주 4·3’ 당시 서귀포시 중문 주민들이 학살된 중문성당 부지에 연면적 1388.62㎡의 ‘중문 치유와 평화의 기념성당’ 기공식을 열고 그들의 희생을 기릴 것이라고 밝혔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교구대회가 열리기 전인 내년 7월 중순 완공이 목표다. 민족의 아픔에 신앙 반창고를 붙이며 평화를 그리는 ‘교회의 자비 정신’이 이듬해 이곳에서 실현될 전망이다.
교구는 이날 기공식에서 화해와 상생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비전도 발표했다. 교구장 문창우 주교는 “2027 서울 WYD에 맞춰 한국을 찾는 레오 14세 교황님이 제주 4·3에 대한 평화의 메시지를 발표하시거나 이곳을 방문하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면서 “제주도민을 넘어 아픈 역사를 겪은 전 세계인을 위로하고, 분노를 화해로 정화해 평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왼쪽 세 번째부터) 성필립보생태마을 원장 황창연 신부와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 교구 중문본당 주임 고병수 신부가 2월 28일 ‘중문 치유와 평화의 기념성당' 기공식에서 시삽을 하며, 새 성전 기공 소식을 전했다.
4·3은 1947년 좌익계열 남로당이 3·1절 기념식에서 도모한 반정부 집회에 경찰이 시위 군중에 발포한 사건으로 촉발됐다. 총선에 반대하는 좌익의 무장 봉기와 이에 대한 진압 과정에서 제주 주민이 대거 희생당했다. 제주 4·3 이후 방치된 학살의 현장에 신앙 공동체가 들어선 것은 6·25전쟁 이후였다. 서귀포본당 주임 한 파트리치오(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는 미국 구호협회를 통해 전쟁으로 인근 화순항을 통해 들어온 피난민 1만여 명을 보살폈다. 주민들은 고마움에 버려진 땅 850평을 교회에 기증했고,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돌을 나르고 깎아 1957년 세운 것이 바로 중문성당의 전신인 37평 규모의 중문공소였다.
그 정신을 간직한 본당은 세월이 흘러 현재 신자 900명의 신앙 보금자리가 됐다. 이에 교구는 지상 3층 647.56㎡ 규모 성당을 신축, 공소를 증축해 사용하던 기존 성당 건물은 과거 모습으로 복원해 ‘치유와 평화의 기억관’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새 성당 들머리에는 ‘중문 치유와 평화의 기념탑’을 세운다. 이는 4·3을 기억하는 4개의 기둥(13~15m)으로 만들어진다. 스페인 통고의 성모상도 들어선다.
제주 4·3 현장에 세워진 제주교구 중문성당이 2월 28일 새 성전 기공식을 열고, 치유와 평화를 향한 첫 삽을 떴다. 제주 중문본당 제공
성필립보생태마을 원장 황창연 신부는 이같은 뜻에 함께하고자 20억 원 상당의 청국장을 기부했다. 전국 32개 본당의 신자 1만여 명도 기꺼이 나눔에 동참했다. 추가 기부도 이어지고 있다.
4·3 당시 이곳 중문 터에서 아버지를 잃은 아들 김상호씨는 “너무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이제껏 단 한 번도 아버지라는 글자를 써보질 못했다”면서 “교회가 4·3을 기억해 우리의 치유를 위해 기도해준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3 기념성당을 통해 앞으로 아버지와 같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는 평화로운 날만 찾아오길 함께 기도하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