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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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루 나무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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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 하논분화구. 황량하게 텅 빈 들판 한구석, 잎을 다 떨군 은행나무 앞에 섰다. 100년이 넘는 시간을 견딘 나무다. 70년 동안 잊혔다가, 신자들의 발걸음 끝에서 운명처럼 발견돼 하논성당이 있던 자리임을 드러냈다.


세차게 흔들리는 가지들이 그간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듯했다. 성당이 사라지는 것도, 사람들이 잊어가는 것도, 그리고 다시 누군가 찾아오는 것도. 아무 말 없이, 그러나 아무것도 잃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자리를 찾아내기까지 쉽지 않았다. 지도에도 없었고, 기억도 희미했다. 신자들은 며칠을 헤매고 또 헤맸다. 그렇게 해서 다다른 곳이 이 나무 앞이었다. 누군가 끝내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발견이었다. 교회의 역사는 기록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과정을 지켜보며 새삼 깨달았다.


세계 여성의 날 기획 기사로 준비한 성녀 마크리나와 빙엔의 힐데가르트, 가경자 마들렌 들브렐의 삶을 살피며 그 나무와 어떤 접점이 느껴졌다. 이들의 삶 역시 조용히 중심을 떠받친 시간이었다. 제도의 한가운데에 서 있지는 않았지만, 교회가 가야 할 방향을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 준 이름들이었다.


신문은 늘 ‘지금’을 다루지만, 취재하다 보면 결국 ‘기억’을 다루게 된다. 이번 호에서 땅에 남은 기억과 책장 속에 남은 이름을 나란히 꺼내 보았다. 하나는 신자들이 찾아낸 자리였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다시 불러낸 이름이었다.


하논분화구의 은행나무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분명한 증언이었다.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중심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다. 기억은 스스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가 다시 바라보고, 다시 부를 때에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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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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