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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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의 혼인 잔치, 그날 성모님과 예수님 앞에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


제주 이시돌에 오신 순례팀과 함께 새미 은총의 동산, 카나의 혼인 잔치 조각상 앞에서 늘 이렇게 문제를 내면, 대부분 다 머뭇거리신다.


여러분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저는 정답이 하인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성모님께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말씀하시자, 하인들은 물항아리에 물을 붓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쪽저쪽에서 “술을 가져오라”, “반찬을 날라라”, “여기 좀 치워라” 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쏟아졌을 터이다. 정신없이 불려 다니면서도, 졸졸 흐르는 물을 묵묵히 항아리에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요한 2,1-12 참조)


그럼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는 사실을 먼저 알게 되었던 사람들은? 물론 하인들이었을 것이다. 과방장이 “이렇게 좋은 포도주는 처음에 내어놓아야지, 왜 지금 내어놓는가?” 하고 묻는 순간, 하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했을지 모른다. “저희는 분명 물을 담았을 뿐인데… 물이 포도주로 변한 건가요?” 하고 속삭이며, 그들은 자신들이 본 일을 더듬어 과방장과 주인에게 전했을 것이다. 기적을 알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요즘 신조어 중에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의미)라는 말이 있다. 사회생활의 어려움 속에 있는 청년들에게 많이 쓰는 단어인데, 나는 신자들에게 이 단어를 이야기한다. 신앙생활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인가? 봉사하는 이 시간이 나에게 무슨 부귀영화를 가져다주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 미사 보내는 시간에 학원이라도 한 군데 더 보내고, 힘은 힘대로 들고, 오해도 사고, 때론 갈등도 있는 이런 시간이 나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사회생활에 장애물로만 보이며, 올해까지만 하고 내년엔 봉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실 거다.


그런데 하인들이라고 믿음이 있었을까? 확신이 있었을까? 그냥 시키니까, 바쁜 사람 불러다 놓고 포도주를 구하러 다녀야 하는데 항아리에 물을 담고 있는 하인들은 그냥 무의미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놀랍지 않은가? 그 사람들이 물이 포도주로 변해가는 사실을 알리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들이 증인이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성모님과 예수님 앞에 가장 오래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중간에 다른 일을 하러 간 하인들은 증인이 되지 못하고 현장에 있던 하인들에게 물어보는 신세(?)가 됐을 것이다.


신앙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교리도 모르고, 강론 시간에 신부님 말씀도 재미없고, 때론 세상이 좋아서 곁눈질도 해보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기쁘고 즐겁게 하기보단 어쩔 수 없는 그런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예수님과 성모님 곁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다고 한다면 우린 언젠가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는 사실을 세상에 선포하고, 설명하는 증거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또한 나의 비어 있는 영혼의 항아리에 물이 담기고 포도주로 채워지는 나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카나의 혼인 잔치의 기적은 바로 ‘나’인 것이다. 그러면서 신앙이 성장하고 믿음으로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 설명이 끝나면 본당 신부님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시다. 내년에 봉사자들이 봉사를 그만둔다고는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때문에~.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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