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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눈] 시작된 터미네이터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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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미네이터’에는 사람을 죽이는 전쟁 로봇이 등장합니다. 로봇 이름은 ‘터미네이터(Terminator)’. 인간과 로봇이 전쟁을 벌이는 미래에서 인간 부대의 지휘관을 사살하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오늘 현재로 온다는 내용입니다. 영화 ‘아웃사이더 와이어’에서 인공지능 지휘관은 동료 병사 38명을 구하기 위해 다른 병사 2명을 희생시킨 드론의 공격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효율성을 중요시한 것입니다.

전투 로봇과 전쟁 인공지능은 더이상 영화나 소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많은 목숨을 앗아간 미국과 이란 전쟁의 중심에는 인공지능이 있습니다. 인간의 지능을 모방해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이제는 인간을 더 빠르고 더 효율적으로 죽이는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위성사진과 데이터 분석을 통해 표적을 찾고, 공격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합니다. 몇 시간 만에 수십 차례의 정밀 타격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은 분명 놀라운 능력입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인간의 생명을 겨누는 순간, 우리는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인간성의 후퇴를 목격하게 됩니다.

전쟁은 언제나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전쟁에는 최소한 인간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마지막 순간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는 책임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전쟁의 판단 과정에 깊이 개입할수록 그 마지막 순간은 점점 흐려집니다. 알고리즘이 분석하고 확률적으로 “최적의 공격”을 제안할 때, 인간은 그저 승인 버튼을 누르는 존재일 뿐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오래전부터 전쟁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양심을 무디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해 왔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전쟁은 언제나 인류의 패배”라고 말했습니다. 전쟁이 기술적으로 더 정교해질수록, 인간은 전쟁 시작의 이유를 더 쉽게 정당화하려 합니다. 피해가 줄어든다고 말하고, 정밀 타격이라고 부르며, 데이터가 판단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름을 붙이든 전쟁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잃습니다.

특히 인공지능이 인간의 얼굴을 인식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위험한 사람’을 분류하며 공격 대상을 제안하는 순간, 우리는 더욱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인간의 생명을 알고리즘의 확률로 계산할 수 있는가 말입니다. 만약 기계가 오판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요. 프로그램을 만든 개발자, 그것을 사용한 군인, 아니면 명령을 내린 정치 지도자 등 책임이 분산될수록 인간의 양심은 더 쉽게 침묵하게 됩니다.

그래서 최근 교회는 인공지능 시대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합니다. 레오 14세 교황은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혜를 대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을 증진하기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술이 인간을 넘어서는 순간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더 잘 지키는 방향으로 사용될 때 비로소 참된 의미가 있다 뜻입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시작된 터미네이터 전쟁>입니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의 양심이 기술을 이끄는 시대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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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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