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100m를 전력 질주하고 난 후의 심박처럼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 지도 수분이 지났건만, 답안지 속 여백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못했습니다. 뾰족한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포기하고 아무거나 찍어 답안지를 채워가면서 운명의 여신에게 제 점수를 맡기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선악과를 취하면 마치 하느님처럼 행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던 유혹자의 본심이 맘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커닝(cunning)! 모든 조건이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옆자리에는 맘씨 착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 녀석이 앉아 있었고, 그 친구는 제 오른편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의 답안지를 쳐다보기도 편했으며, 우리의 자리는 거의 맨 뒤쪽이었기 때문에 감독 선생님의 눈을 피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결국 제 생애 최초이자 최후의 커닝 사건이 이뤄진 것입니다.
수성 사인펜을 잡은 손이 식은땀으로 젖어 들고, 요동치던 심장은 폭발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온몸의 촉각이 은밀한 이 범행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곤두서고 있었습니다. 옆자리 친구의 답안지를 향하고 있던 저의 두 눈동자는 그 어떤 매의 눈빛보다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고, 천리안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을 정도로 초점이 또렷하게 맞춰져 있었습니다. 이윽고 문제의 답을 찾아내어 땀으로 뒤범벅된 손으로 잽싸게 적어 넣고, 기어이 답안지 속 여백을 남의 지식으로 검게 물들이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시험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습니다.
그렇게 끝이 나길 바랐습니다. 오랜 숨을 참고 있었던 종소리가 가슴 떨리게 숨을 내뱉으며 교정에 울려 퍼지다가 은은하게 사라져 갔듯이 나의 시험도, 나의 만행도 그저 그렇게 대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지기를 아주 잠시 동안 간절히 바랐습니다. 허나 종소리와 더불어 감독 선생님의 또렷한 음성이 교실 안에 울려 퍼진 것이었습니다. “노! 성! 호!”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더니 역시 이번에도 그 말은 큰 위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감독 선생님께 적발되어 커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위기에 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노성호. 너 커닝했지? 옆의 애 거 봤지?”
당연히 “예”라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너무나 비겁하고 옹졸하며 치사한 한마디의 강한 부인(否認)을 입술 밖으로 내뱉고 말았습니다. “아니오!”
‘똥 싼 놈이 성낸다’고 했던가요? 그때의 제 꼴이 딱 그짝이었을 것입니다. 커닝했는지를 물으시던 선생님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인상까지 써 가면서 안 했다고 부득부득 우기고 섰던 제 모습이 지금도 아련히 떠오릅니다. 구차한 변명을 위한 기회를 구걸해도 모자랄 판에 계속 발뺌만 해 댔다니!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저의 강한 부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이상하리만치 편안한 인상으로, 마치 저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감싸안아 주시려는 듯 온화하게 말입니다.
교탁으로부터 몇 미터 안 되는 제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에 몸이 떨려왔습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를 석방시켜 주신 선생님의 미소 가득한 얼굴이 계속 아른거렸습니다. 어차피 내 지식도, 내 실력도 아닌 답안으로 좋은 점수를 받아봤자 무엇하나 하는 생각에 심한 후회가 밀려들기도 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자리에 앉아 시험이 끝난 것에 대한 해방감을 만끽하며, 친구들과 더불어 희희낙락 잡담만 늘어놓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반사적으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세차게 교실 뒷문을 박차고 뛰쳐나갔습니다. 저 앞에 교무실로 향하시는 선생님이 보였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까 커닝을 했습니다.”
격하게 혼을 내시거나 굵고 긴 지휘봉으로 엉덩이 몇 대를 시원하게 두들겨 주셨더라면 맘이라도 편했을 것을, 선생님의 그 온화했던 미소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백하지 않고서는 다시 그 선생님의 얼굴을 뵙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다니! 시험은 빵점 받아도 나중에 만회할 수 있지만, 선생님을 실망시켜 드린 오늘의 잘못은 그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저의 떨리는 고백에 이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사실 나는 네가 오늘 안으로 말할 거라 믿었어. 내가 알고 있는 너는 그런 애가 아니거든.”
선생님께서는 이미 다 보고 알고 느끼고 계셨던 것입니다. 시험 막판에 초조해하던 제 모습과 안절부절못하며 이곳저곳 눈치를 살피던 저의 몸짓, 그리고 옆 친구의 답안을 남몰래 옮겨 적어 가며 가슴 떨려 하던 속마음까지도 말입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날 때까지 참아주셨고, 내가 커닝하지 않기를 바라고 계셨으며, 커닝했냐는 질문에 늦게라도 “예!” 하고 대답해 주길 바라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으면서도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뉘우칠 수 있도록 무언의 미소로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무척 그리운 날입니다.
글 _ 노성호 신부 (요한 보스코, 수원교구 명학본당 주임)
2004년 사제 서품. 평택 효명고등학교 교목, 수원교구 모산골, 양평, 죽전본당 주임을 거쳐 현재 명학본당 주임소임을 맡고있다. 한국교회 최초의 노래하는 형제 사제 듀오로, 동생 노중호 신부와 함께 2016년 Nobis Cum
(노비스꿈) 1집 ‘우리와 함께’를, 2022년 2집 ‘또 다시 우리와 함께’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