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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상처 입은 세계의 지도를 따라가는 교황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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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공보실은 레오 14세 교황의 해외 사목방문 일정을 발표했다. 방문지는 모나코 공국, 아프리카 네 나라, 스페인, 그리고 람페두사다.


서로 전혀 달라 보이는 목적지들이지만, 교황청은 이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공개했다. 이는 로버트 프레보스트의 교황직이 로마에 굳게 뿌리내리면서도 끊임없이 길 위에 서 있는, 정주(定住)와 순례를 동시에 품은 사목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특히 분명하게 드러나는 메시지가 있다.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미국 출신 교황은 유럽의 문턱이자 단층선이 된 섬, 지중해 이주의 교차로 람페두사에 선다.


이 날짜는 우연이 아니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사목 방문지였던 람페두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때 람페두사는 단순한 지리적 장소를 넘어 도덕적 지형이 되었다.


그러나 여정의 시작은 모나코다. 이는 근대사에서 교황이 이 작은 공국을 방문하는 첫 사례가 된다. 화려함과 스펙터클의 이미지 이면에서 모나코는 생태적 책임과 인간 존엄 수호에 꾸준히 힘써 왔다. 이 선택은 작은 국가 역시 도덕적 진지함의 실험실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순방의 중심은 단연 아프리카다. 알제리는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출신 교황에게 개인적 울림을 지닌다. 이곳은 성 아우구스티노의 땅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인 인구가 1도 되지 않는 무슬림 다수 국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방문은 두 축 위에서 전개된다. 하나는 영적 계보, 다른 하나는 종교 간 대화다. 알제리의 정치적 상황 또한 미묘하다. 6월로 예상되는 총선은 중대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교황은 자유와 공존, 신앙과 공적 삶이 만나는 취약한 공간에 대한 질문을 안고 그 땅을 찾는다.


카메룬에서는 내전의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변호사와 교사들의 평화적 시위로 시작된 갈등은 분리주의 세력과 정부군 간의 무장 충돌로 번졌고, 심각한 인권 침해 의혹도 제기돼 왔다. 이 방문은 외교적 제스처라기보다 교황이 ‘가까이 있음’을 보여주는 행위다. 균열이 가장 깊은 곳에서 교회의 현존이 의미를 지님을 보여주는 자리다.


앙골라는 또 다른 역설을 안고 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주요 경제국이자 대표적 산유국이지만, 인구의 40 이상이 빈곤선 아래에 있다. 정치권력은 수십 년간 소수 엘리트에게 집중돼 왔다. 최근 몇 년 사이 앙골라 가톨릭교회는 빈곤과 정치적 불관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더욱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활력 있으면서도 시련 속에 있는 교회를 만나게 될 것이다. 앙골라교회는 민중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마지막 아프리카 방문지는 적도기니다. 1979년부터 집권해 온 테오도로 오비앙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재임 중인 국가 지도자 가운데 한 명으로, 비판자들은 그 체제를 ‘가족 중심의 권위주의’로 규정한다. 막대한 석유 자원과 광범위한 빈곤이 공존한다. 교황은 정권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방문한다. 이 구분은 중요하다.


여정의 마무리는 스페인이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안토니 가우디 서거 100주년을 맞아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새 중앙 탑을 축복하며 개막한다. 이는 신앙과 건축, 그리고 국가적 기억을 잇는 상징적 행위다.


카나리아 제도 방문은 람페두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또 하나의 해상 경계, 아프리카 이주민이 유럽 해안으로 들어오는 또 다른 관문이기 때문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편안한 목적지를 선택하지 않는다. 갈등이 남아 있고 억압의 그림자가 드리운 곳으로 간다. 동시에 인구학자들이 세계 가톨릭교회의 미래로 지목하는 아프리카, 곧 교회가 성장하고 있는 대륙으로 향한다. 무슬림이 다수를 이루는 땅에서 아우구스티노의 발자취를 따르며 종교 간 대화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드러낸다. 세속화의 피로를 겪고 이주 문제가 도덕적 분열선이 된 고령화된 유럽으로도 간다.


이 여정들은 단순한 일정표가 아니다. 상처 입은 세계의 지도를 그려 보이며, 멀리서 관망하기보다 그 안에 머물기를 선택한 교회의 길을 드러내는 순례인 것이다.



글 _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
예수회 사제로 교황청 문화교육부 차관보로 일하고 있다. 예수회 잡지 ‘라 치빌타 카톨리카’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저서로 「SNS 시대의 신학」과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대담을 엮은 「교황 프란치스코: 나의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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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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