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왕(上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절. 왕의 자리를 아들이나 후계자에게 물려주고 물러난 전임 국왕을 부르는 말입니다. 하지만 왕이 사라지고 국민이 대통령을 뽑는 민주주의의 시대에 ‘상왕’은 달리 쓰이고 있습니다. 왕보다 더 위에 있는 왕, 즉 선출되지 않는 자가 권력을 휘두르는 정권의 실질적인 막후 권력자를 ‘상왕’이라 부릅니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이 그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순실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공동체의 시민들은 ‘상왕’을 정치 유튜버에게 붙이고 있습니다.
최근 ‘민주당 상왕’이라 불리는 김어준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장인수 전 MBC 기자는 “대통령 측근인 정부 관계자가 고위 검사들에게 이 대통령의 공소 취소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장씨는 “이 관계자는 내 말이 곧 대통령 뜻이라고 말했다”고 말하며 “여기까지는 팩트”라고도 했습니다. 다른 출연자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대통령 탄핵 사유”라고 했습니다. 현재까지 이런 주장을 한 이는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에 관한 김씨의 유튜브 채널 보도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황당함을 넘어 기가 막히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라거나 “지라시 수준도 안되는 음모론”이라며 의원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청래 대표는 “당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강력 대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청와대는 “음모론에 대응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에 김씨는 “자신에 관한 고소·고발에 무고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야당인 ‘국민의힘의 상왕’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동혁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가 ‘윤석열 대통령과의 절연 선언’을 하자 전씨는 “‘윤 어게인’에 설지, 절윤에 설지 선택하라”고 말했습니다. 탈당 카드까지 꺼내며 압박을 했지만 결국 장 대표는 전씨와 선을 그었습니다. 지금까지 전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을 찬성하고 탄핵에 반대하는 ‘윤 어게인’의 선두에 있었습니다. 제2의 건국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복귀시키겠다며 ‘건국 펀드’를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왕’ 정치 유튜버들이 정치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배경에는 수십에서 수백만에 이르는 ‘정치 팬덤’있습니다. 정치 유튜버들의 말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이들이 권력입니다. 종교의 ‘교주’와 ‘교인’의 관계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이성이 아닌 믿음으로 정치 유튜버들을 따르는 ‘팬덤’입니다. ‘팬덤’은 선과 악으로 세상을 갈라치기하고 대화와 타협이 아닌 혐오와 증오로 정치를 해석합니다. ‘선거 조작’처럼 건전한 이성과 양심이 있다면 식별할 수 있는 황당한 음모에 몰두합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정치 유튜브에 출연하는 일을 명예로운 일로 여겼습니다.
강준만 전북대학교 명예교수는 정치 유튜버를 “증오와 혐오 정치의 선동가” “정치 무당”이라고 불렀습니다. 강 교수는 정치 유튜버에 의해서 “음모론이 판치는 정치 무속의 세계가 열리고 말았다”고 말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음모론을 펼치는 정치 유튜버를 이용해 정권교체나 정치 생명을 연장하려는 정치인들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 정치가 진리 안에서 올바르게 될 때, ‘상왕 유튜버’들도 사라진다는 말일 겁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 왕위의 왕, 정치 유튜버 >입니다. 음모론이 아닌 양심과 상식으로 정치를 식별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