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다블뤼 주교 등 다섯 성인의 숨결이 깃든 ‘오성바위’가 반세기 만에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에서 본래 자리인 충남 아산으로 돌아간다. 서울대교구는 18일 오성바위를 원위치인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로 이전하기로 대전교구와 협의했다. 오성바위가 1973년 보존을 위해 절두산순교성지로 옮겨진 지 53년 만이다.
오성바위라는 이름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충남에서 순교한 다섯 성인에서 유래했다. 제5대 조선대목구장 다블뤼 주교를 비롯해 위앵·오매트르 신부와 장주기(요셉)·황석두(루카)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성인이 홍주 거더리에서 체포돼 서울로 압송되던 길과 순교지인 보령 갈매못으로 향하던 길에 잠시 쉬며 기도를 바쳤던 자리가 이 바위라고 전한다. 오성바위는 두께 1m, 너비 4m, 둘레 11m에 달하는 널찍한 형태다.
이전 논의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2년 12월 시작됐다. 당시 대전교구 온양본당 조병식(프란치스코) 회장은 바위의 훼손을 우려해 절두산순교자기념관장 박희봉 신부에게 원형 보존을 위한 이전을 건의했다. 박 신부는 현장을 살피고 바위 이전을 검토했으나,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최석우 몬시뇰(당시 신부)의 의견에 따라 이전을 보류하고 ‘현지 보존’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도랑 정비에 오성바위를 사용하려는 등 훼손 우려가 커지자 조 회장은 음봉면장·동천리장과 상의해 이전 허가를 받아냈다. 하지만 곧 마을 주민들이 ‘공동 휴식처로의 활용’을 이유로 이전을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박 신부와 조 회장이 바위가 위치한 부지 소유자와 주민들을 설득했고, 마침내 1973년 오성바위 이전이 결정됐다. 무게 16톤의 바위를 충남에서 서울로 옮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군청과 경찰 그리고 미군 제83병기대대의 협조로 그해 4월 12일 무사히 절두산순교성지에 안착했다.
이후 절두산순교성지는 오성바위의 풍화와 오염을 막고자 별도로 야외 전시관을 설치하는 등 보존과 순교 영성 현양에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아울러 성지와 서울·대전교구는 오성바위의 역사적 의미를 고려해 본래 자리로의 이전을 논의해왔다. 그리고 지역 주민과의 소통과 순례자들의 신심 고취 등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에 뜻을 모았다. 오성바위 이전에 관한 구체적인 시기와 방안은 관계자들의 협의를 통해 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