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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레오 14세 교황과 ‘떠나지 않았던’ 조용한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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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감독 자비에 보부아의 <신과 인간(Of Gods and Men)>에는 그 어떤 지정학적 분석보다 더 큰 울림을 지닌 한 장면이 있다. 알제리 티비린(Tibhirine) 마을의 한 무슬림 여성이 떠날지를 두고 고심하는 한 트라피스트 수도자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새들이고, 수사님은 나뭇가지예요. 수사님이 떠나면, 우리는 어디에 내려앉아야 하나요?”


이것은 완벽한 자리바꿈이었다. 겉으로는 가장 연약해 보이는 존재, 곧 포화에 휩싸인 땅에 서 있는 외국인 성직자가, 실은 공동체 전체를 떠받치며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이었다.


바로 이 이미지를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언론이 ‘첫 미국인 교황’이라는 서사에만 집중하느라 거의 완전히 간과해온 레오 14세 교황의 삶을 다른 각도로 비출 수 있다. 더욱이 지금처럼 국제 정세의 긴장이 극도로 높아진 시대에는 말이다.


베드로의 후계자로 선출되기 전, 로버트 프레보스트는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젊은 수도자였다. 그는 1988년, 센데로 루미노소(Sendero Luminoso)의 폭력이 휩쓸던 페루에 남기로 선택했다. 이 마오주의 무장조직의 폭력은 체계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권위를 상징하는 모든 이를 표적으로 삼았다. 시장, 지역 공동체 지도자, 사제가 그 대상이었다.


트루히요대교구는 그에게 무장 경호를 제안했지만 프레보스트 신부는 이를 거절했다. 그는 자신이 섬기던 사람들과 똑같은 위험을 함께 감수하기로 했다. 그의 몇몇 동료들은 떠났지만, 대부분은 남았다. 인근 침보테교구에서 사제 세 명이 살해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영웅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아주 근본적인 믿음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가장 절실히 도움이 필요할 때, 친구를 버리고 떠나서는 안 된다는 믿음 말이다.


이 이야기는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도덕적으로는 쌍둥이와도 같은 또 다른 이야기와 나란히 놓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알제리는 ‘암흑의 10년’(Black Decade)을 보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가톨릭 수도자와 성직자 19명이 살해됐다. 그들 가운데에는 1996년 3월 26일에서 27일로 넘어가는 밤 납치됐다가, 두 달 뒤 메데아(M?d?a) 인근에서 머리만 발견된 티비린의 트라피스트 수도승 7명도 있었다. 또 8월 1일 운전기사였던 젊은 무슬림 모하메드 부시키(Mohamed Bouchikhi)와 함께 차량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은 오랑교구장 피에르 클라베리(Pierre Claverie) 주교도 있었다. 그들 역시 남기로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1995년 3월, 알제리의 수도 공동체들 사이에서는 한 문서가 회람됐다. 거기에는 노골적인 물음이 적혀 있었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Partir ou rester?)


그 답은 오히려 담담할 정도로 단순했다. 남아 있어야 할 이유는, 애초에 그들이 그곳에 오게 만들었던 이유와 같다는 것이었다.


이 두 이야기는 실제로 서로 교차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둘을 관통하는 질문은 하나다. 왜 폭력이 자신을 사냥하듯 뒤쫓는 그 자리에 남아 있으려 하는가?


클라베리 주교는 죽음을 얼마 앞두고 그 질문에 가장 분명한 설명을 남겼다. 우리는 병든 친구의 침상 곁을 지키듯이 그 자리에 머문다는 것이다. 말없이, 그저 그의 손을 붙잡고 있으면서. 그것은 사건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하는 몸짓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 몸짓이기도 하다.


레오 14세 교황은 며칠 뒤 알제리를 방문할 예정이다. 그곳은 프레보스트 신부가 “최초의 현대인”이라고 부르는 히포의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땅이며, 동시에 순교자들의 땅이기도 하다. 그는 순교자들과 비슷하게 선택했던 기억을 품은 채 그 땅을 밟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시 페루에서의 상황이 조금만 달랐더라면 어땠을까. 바리케이드 하나, 매복 한 번만 달랐더라도, 오늘날 미국인 교황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 있다. 대신 한 명의 순교자가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바리케이드 하나, 매복 한 번이 차이를 낳았다. 총알이 발사되는 것을 막았고 다른 길을 선택해 살아남았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이러한 자각, 곧 자신의 삶이 그저 살아진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주어졌다는 인식이야말로 그의 교황직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가장 결정적인 열쇠인지도 모른다.



글 _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
예수회 사제로 교황청 문화교육부 차관보로 일하고 있다. 예수회 잡지 ‘라 치빌타 카톨리카’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저서로 「SNS 시대의 신학」과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대담을 엮은 「교황 프란치스코: 나의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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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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