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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월간 꿈CUM] 성화로 읽는 신약 성경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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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1640, 나무판에 유채, 56.5x47.9cm, 디트로이트 미술관, 디트로이트, 미국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ijn, 1606~1669)은 1606년 7월 15일에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제분업자인 아버지 하르멘 헤리츠 반 레인과 귀족 출신 어머니 코르넬리아 반 사위트브로에크 사이에서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유한 부모 덕분에 그는 일곱 살에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여 고전과 성경과 칼뱅주의 교리 등을 배우고, 열네 살에 레이던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성경 문헌과 인문학을 익혔지만, 그림에 온 마음을 빼앗겼던 그는 1621년경에 학업을 그만두고,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레이던의 화가 야콥 반 스와넨부르흐(Jacob van Swanenburgh, 1571~1638)의 도제로 들어가 3년간 그림을 배우고, 1624년에는 암스테르담의 화가 피에테르 라스트만(Pieter Lastman, 1583~1633)의 공방에서 조수로 6개월을 보낸다. 

렘브란트의 스승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가톨릭 화가이다. 그의 부모가 칼뱅교로 개종했지만, 어머니의 친척들은 가톨릭을 고수했고, 친척들의 주선으로 가톨릭 화가를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우상숭배라며 성상을 파괴하고 성화를 불태웠지만, 가톨릭은 성화를 더욱 장려했기 때문에 개신교 신자인 렘브란트가 성화를 많이 그리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렘브란트는 19살 때, 한 살 아래인 리벤스(Jan Lievens, 1607~1674)와 함께 1625년에 고향인 레이던에 공방을 차렸다. 관습에 얽매지 않은 두 젊은 화가의 명성은 주변에 금세 퍼졌고, 빛과 어둠을 통해 양감을 나타내는 키아로스쿠로를 이용한 그림들을 본격적으로 그렸으며, 노인을 모델로 레이던 화가들의 정교한 회화를 구사하고, 성경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으로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렘브란트 인생에서 전환점은 1628년에 콘스탄테인 호이헨스를 만나면서부터다. 인문주의자였던 호이헨스는 오라녜 가문의 프레데릭 헨드릭 총독의 비서로 1632년에서 1646년 사이에 헤이그 궁의 예배당을 꾸미는 중개인 역할을 했다. 렘브란트는 그에게서 7개로 구성된 연작을 주문받았다. 렘브란트는 1632년 6월에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여 화상인 헨드리크 오일렌부르크의 집에서 지냈고, 1634년에 화상의 조카이자, 사망한 시장의 딸인 사스키아와 결혼하고, 1635년에 아내의 막대한 재산으로 호화로운 집을 산다.

렘브란트의 황금기는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1632년부터 1642년까지이다. 화가가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벌려면 그림의 주문과 제자가 많아야 한다. 이 시기에 렘브란트는 재력가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고, 1635년에는 거대한 창고를 빌려, 그곳을 공방으로 개조하여 제자들을 많이 받았다. 또한 렘브란트가 1633년부터 1639년에 그린 「그리스도의 수난」 연작은 렘브란트를 단숨에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네덜란드 최고 권력가인 프레데릭 헨드릭 총독의 경당에 이 연작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렘브란트가 1640년에 그렸고, 루카복음 1장 39-56절이 배경이며, 미국 디트로이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을 보면 의아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왜 마리아는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로 달려가지 않고, 마부를 거느리고 말을 타고 여행했을까? 왜 흑인 시녀가 마리아에게 녹색 망토를 입히는 것일까? 왜 마리아는 베일을 쓰지 않고 왕관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일까? 왜 사제 즈카르야는 궁궐 같은 집에서 나와 계단으로 내려오는 것일까? 왜 공작새는 등을 돌리고, 닭들은 마리아를 향해 환호하듯 달려가는 것일까? 왜 배경에 예루살렘 성전이 암흑 속에 감추어져 있을까?

이 모든 의문의 해답은 왕의 대관식으로 해결된다. 대관식에서는 왕이 될 사람이 말을 타고 입장하면 먼저 왕의 이름을 발표하고 왕관을 씌우고 망토를 입힌다. 왕이 왕좌에 오르면 사제는 이를 공인한다. 그러면 백성은 만세삼창을 한다. 마리아의 모습은 소녀의 모습이 아니라 여왕의 자태다. 마리아는 말을 타고 입장하고,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칭하며, 마리아는 왕관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망토를 입고 계단으로 오른다. 이에 사제 즈카르야는 여왕을 공적으로 인준하고 닭들은 기뻐 춤추며 환호한다.
왜 공작새가 등을 돌리고, 닭들이 환호하며 마리아에게로 달려가는 것일까? 마리아의 노래에 묘사된 대로 그분은 부유한 자들을 내치시고 가난한 이를 들어 올리신 분이기 때문이다. 왜 엘리사벳은 강아지 줄을 꼭 붙들고 마리아를 애절하게 바라보는 것일까? 그것은 마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라도 원하는 가나안 여인처럼 여인 중에 가장 복되신 마리아의 은총 부스러기라도 원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영광은 땀과 눈물의 결실이다. 마리아가 들고 있는 손수건에서 떨어지는 두 개의 물방울은 눈물방울일 수도 있고, 땀방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아픔을 이겨냈기에 모든 이의 칭송을 받을 수 있었다. 비록 천상 예루살렘은 암흑 속에 감추어져 있지만, 주님의 뜻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마리아는 모든 여인 중에 가장 복된 분이시다.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맞대고 보는 날에 감추어진 것은 모두 나타나기 때문이다.  



글 _ 손용환 신부 (요셉, 원주교구 북평본당 주임)

1992년 사제 서품. 원주교구 소속으로 16년간 군 사목을 한 후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였으며, 현재 북평본당 주임으로 있다. 저서로 「오색의 기도」 「하느님의 가장 좋은 선물」 「사제의 향기」 「맹 신부」 「어리석음의 승리」 「천주교 군종교구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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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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