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사춘기 시절의 설레는 경험은 존재합니다.
사제인 저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고등학생 시절 어느 성탄 밤 본당에서는 가요제가 한창이었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댄스팀을 꾸려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열띤 공연을 마치고 청소년들이 어울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여자 아이들이 다가왔습니다.
“저기, 제 친구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데요?” 저는 참 멋대가리 없이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긴 어떻게 생각해? 머리로 생각하지.”
하지만 그때부터 그 아이와의 사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나에게 거북이 인형과 당시에 유행하던 은반지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분홍색 털이 복실복실한 토끼 인형을 선물해 주었지요. 휴대폰은 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서로 전화통을 붙들고 있기가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좋았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슬슬 지겨움도 느꼈습니다. 한번은 전화가 와서 수화기를 들고 눈으로는 제가 좋아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특별 공연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걸 보면서 건성으로 대답한 기억도 납니다.
그 무렵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성소 모임에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성소의 여정은 당연하게도 제가 사귀고 있는 이 만남을 재고하게 하였습니다.
즉, 선택을 해야 했던 것이지요. 저에게는 열린 선택이었습니다. 둘 중 어느 것에도 매여 있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마침내 그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오빠는 신학교를 가야 해. 그러니 이렇게 계속 만날 수는 없단다.” 그리고는 그렇게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한참 동안을 그 친구가 보고 싶어서 마음고생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비슷한 단발머리가 보이면 혹시나 그 아이인가 싶어 버스가 지나칠 때 고개를 뒤로 돌려 한참 동안 얼굴을 찾아 헤매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꿈에 그 아이가 나타나 ‘오빠 신학교 안 가면 안되요?’라고 해서 잠을 깬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그 친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저 어디서든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이 사춘기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선택’이라는 주제를 생각합니다.
사제는 결혼하지 못해서 사제가 되는 이들이 아닙니다. 다만 스스로 식별해서 더 좋은 것을 선택하는 이들입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선택을 하고 살아갑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을 시도하는 것보다 미워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나은 것처럼 보여서 그 선택을 합니다.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도 그것을 벗어나는 시련보다 마약을 구하고 즐기는 쾌락이 더 낫다고 여기기에 그 선택을 합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자유의지가 존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생각하기에 더 나은 것을 언제나 선택하는 법입니다.
사제는 하느님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사제만이 아니라 신앙인이라는 존재가 그러합니다. 우리가 신앙인인 이유는 세상 안에 살면서도 하느님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그러한 선택 속에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했고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하느님은 저를 꼭 붙들어 주셨고 다시 길을 가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은 도리어 나의 사제의 삶을 더욱 깊게 만들어 주는 훌륭한 계기가 되기도 했고 다른 힘든 이들을 도와주는 데에 필요한 뒷받침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의 선택을 바탕으로 자국들을 남기게 됩니다. 삶을 선택하는 이들은 삶의 자국이 남을 것이고 죽음을 선택하는 자들은 죽음의 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모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수많은 것들이 우리를 속여도 그분만큼은 우리를 속이지 않으니까요.
글 _ 마진우 신부 (요셉, 대구대교구 초전본당 주임)
2005년 서품. 남미 볼리비아 동부 산타크루즈에서 선교했으며, 현재 유튜브 ‘겸손기도 신부’(@semitoon)와 블로그(https://semitoon.blogspot.com)를 통해 세상에 말씀을 전하고 있다. 평화방송 TV ‘겸손기도 신부의 와서 보시오’에 출연해 주목받았으며, 에세이집 「아무것도 없었지만 모든 것이 있었다」, 교리서 「포근한 가정 교리서」, 만화책 「SEMITOON」 「PRIESTOON」을 펴냈다. 뼛속 깊이 선교사인 사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