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동안 로마에서 성주간을 보낼 수 있는 큰 은혜를 누렸다. 그곳에는 전 세계의 10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함께한다. 교황님 가까이에서 파스카 성삼일을 지내고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무덤을 찾아 기도하며 서로의 신앙을 나누고 교회의 보편성을 구체적으로 체험한다.
처음 몇 해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더 마음이 갔다. 웅장한 건물, 오랜 역사, 로마의 아름다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선이 조금씩 달라졌다. 성주간을 더 내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전례 안에서, 침묵 안에서, 기도 안에서 말이다. 그 가운데 특히 마음을 울리는 장면이 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인종과 삶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믿음을 고백하며 함께 있는 모습이다. 각기 다른 감수성과 길을 지니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한 분 그리스도가 계신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종종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아주 단순한 일이지만 많은 것을 깨닫는다. 익숙한 자리에서 한 걸음 나와보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지난 칼럼에서는 교회 보편성을 ‘밖으로 향한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그 보편성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생각해보고 싶다.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다양한 영성과 길이 존재한다. 우리의 목적은 같다. 바로 ‘성덕’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같은 방식으로 부르지 않으신다. 어떤 이에게는 침묵이, 또 어떤 이에게는 활동이 더 가까운 길이 된다. 누군가는 전례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또 누군가는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섬김 안에서 그분을 만난다. 다만 이 모든 길은 교회 안에서 주어진 같은 믿음과 성사 안에서 하나로 이어져 있다. 교회 일치는 모두가 같은 것을 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같은 믿음 안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같은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데서 이루어진다.
고향 스페인에 있을 때를 떠올리면 많은 신자가 다양한 공동체 안에서 신앙을 살아갔다. 주일 미사는 본당에서 함께 드리지만, 신앙의 구체적인 삶(교육·영적지도·피정)은 각기 다른 영성 안에서 채워졌다. 예수회, 살레시오회, 네오까떼꾸메나도 길, 오푸스 데이, 레지눔 크리스티 그리고 수많은 수도회까지.
그 모습 안에서 교회의 보편성을 자주 느꼈다. 다양성은 분열이 아니라 오히려 각자가 자신의 자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힘이 된다. 길은 다르지만, 목적지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교회다.
우리는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가장 옳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배움을 멈춘다. 서로에게서 배우려는 겸손 그리고 대화에 열려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다른 이들의 기쁨을 함께 기뻐할 줄 아는 마음도 중요하다. 그들의 열매나 성소들을 내 것처럼 기뻐하고 함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특정한 방식만을 절대화하고 그것을 모두에게 요구하는 태도는 결국 교회의 풍요로움을 가린다. 교회의 힘은 획일성에 있지 않다. 서로 다른 모습들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를 이루는 데 있다. 나누는 다양성이 아니라 품어주는 다양성이다.
과거에는 다양한 모습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우리는 조금만 눈을 돌려도 교회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 숨 쉬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불안의 이유가 아니라 기쁨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
그 기쁨이 사라질 때, ‘내 것’이 아닌 곳에서 드러나는 선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그것은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자주 말하는 그 ‘보편성’을 아직 충분히 살아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가톨릭적으로 산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